마흔 번 넘게 맞이하는 장마철은 고되다. 눅눅해지는 바닥이 싫다. 물을 엎지른 것같은 느낌을 막으려고 보일러를 튼다. 바닥 습기는 대충 사라졌거니 싶었는데, 공기가 문제다. 물기를 잔뜩 품고 있다. 습식사우나에 들어간 것마냥 땀이 줄줄 흐른다. 결국 제습기에 손이 간다. 실내 온도가 올라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최후의 수단으로 에어컨을 가동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냉기가 몸을 감싼다. ‘중년이라 뼈가 시린 것인가’라는 되도 않는 무기력이 더해져 에어컨을 끈다.

장마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습기를 몰아내면 과한 온기가 압박해 온 신경을 건드린다. 중도ㆍ중립의 여지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마흔에서 쉰으로 가는 길목에 걸쳐진 이들의 처지가 장마 속에 있는 형상과 닮았다.

‘눈 깜빡하면 일주일이 흐른다’는 예순ㆍ일흔 어른들의 푸념이 피부에 와닿는 시기다. ‘이러다 나도 곧 가겠지’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불안하기보단 ‘이제까지 해놓은 게 없다’는 반성이 줄잇는다. 기다려주지 않을 부모에 대한 갖은 상념도 얄팍한 성찰의 주요한 소재다. 반성한다는 건 ‘아직 갈 날은 멀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하다. 근거없는 배포이지만, 이런 게 중년의 힘일 수 있다.

그러나 삶을 일거(一擧)에 바꿀 혁신적인 ‘그 무엇’은 나타나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 마감 10여분을 앞두고 로또를 산 뒤 ‘꽝’임을 확인하기 직전까지의 그 ‘짧은 행복’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마흔이 구질구질하다고 스물ㆍ서른이 찬란하기만 한 건 아니다. 속도조절이 힘들었고, 배려가 뭔지 몰랐다. ‘세상의 중심에 섰다’는 치기는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마저 들게 했다. 빵빵하게 부푼 풍선에 든 바람이 ‘휘이익~‘하고 빠지는 순간, 자존감도 한 순간 무너지는 느낌도 경험했다. 스물ㆍ서른의 그런 붕괴가 있기에 마흔이 구축됐던 거겠지만, 너무 처절한 붕괴가 되지 않도록 조율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요즘 불도저같은 정부 기관들이 있다. 스물ㆍ서른의 추진력이 느껴진다. 특정 대기업을 겨낭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집행한다. 몸집이 거대한 기업이 계열사에 편법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걸 발본색원하고, 소비자 돈을 모아 관리해야 하는 재벌 금융기관이 비(非)금융계열사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도 제어하겠다는 내용들이 골자다. 경우에 따라선 재벌 지배구조가 확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있다.

이제껏 눈감아줬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대의적 측면에서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기업 정책은 어렵다. 성공의 관건은 속도다. 단칼에 수 십 년간 퇴적된 기업 생태계가 바뀔리 만무하다. ‘만날 힘들다’는 기업인의 앓는 소리를 클리셰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애로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긴요하다. 실적은 빈약하지만, ‘열정 과도’의 청년기를 보낸 마흔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마철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제습기 틀었다가 에어컨을 켜는 식으로 널을 뛰면 전기료만 많이 나올 뿐이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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