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분) 미혼모래” “아 그래애?”
나완 상관없는 (것이라 단정한) 주제. 잘 모르면서 아는 척. 나와 마주한 A가 듣고 답한다. 역시 아는 척. A와 나는 가족형태=양친부모라고 칼같이 믿는다. 그렇게 배워서다. 적어도 저들에게, 다른 유형은 가족이 아니다. 둘의 대화는 모호한 지식과 강고한 개념의 혼합물.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단어. ‘썰’이 태어난다. 그리고, 썰이란 단어가 붙은 말일수록 재밌어 한다. 썰로 포장한 대화는 필연적으로 퍼진다. 소문의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왜 잘 모르고, 또 그렇게 배워왔나. 주변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가 정확하다. 숨어버린 당사자, 즉 ‘미혼모’는 당당하게 말 못한다. 오랜 세월 그래왔다.
싱글맘은 어떻게 ‘썰’의 주인공이 됐나
아빠가 없는 아이 엄마, 즉 ‘미혼모’라 불린 이들은 왜 이런 처지가 돼 버렸을까.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는, 법이다. 그것도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호적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성정현 협성대 교수 등에 따르면, 일본은 1871년 호적법을 만들며 남성 중심의 핏줄을 최고의 가치로 올려놨다. 가부장적 개념은 국법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1920년대, 일본 가족법의 주요 원칙인 일부일처ㆍ법률혼주의ㆍ부계혈통주의가 이식됐다.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 ‘사생아’란 단어도 일제 때 등장했다. 조선시대까진 안 쓰였던 단어다. 조선은 모계 혈통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은 사회였다. ‘엄마’가 사라진 일본 가족법은 식민지 조선인에게 삶의 원칙이 됐다. 자기 핏줄을 벗어난 ‘미혼모’를 배척하는 것이 곧 법 준수로 인식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가족에서 빠졌다.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사라져갔다. 희소한 존재가 됐다.
“애비 없이 자란 아이는 버릇이 없다”라는 썰 쉽게 뵈지 않는 대상일수록 썰의 숫자는 급증한다. 썰은 100년 가까이 쌓였다. 21세기 한국인도 거리감을 둔 채 그들을 쳐다본다. 멀리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미혼모는 가족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제주대 임애덕 박사는 2016년 발표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여러가지 영향요인 가운데, 가족유형태도(Family type attitude)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글맘을 ‘정상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는 우리 부모세대의 훈육과 꾸지람으로 정확히 압축됐다.
“애비 없는 아이랑 같이 놀지 마라, 버릇 안 좋아진다!”
‘썰’의 피해자 최소 5만 2000명, 많게는 200만 명 이상
한국엔 지금껏 정확한 싱글맘 통계가 없었다. 2016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집계방식을 개선하면서 그 숫자가 비로소 드러났다. 데이터에 따르면 통계청이 “미혼모”로 정의한, 즉 법적으로 미혼인 엄마의 수는 2만 4000명이다. 그들의 자녀는 2만 8000명. 합치면 5만 2000명이다.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싱글맘 썰’의 피해자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자. 훨씬 많아진다. ‘애비없는 아이’란 낙인은 이혼한 엄마, 남편과 사별한 엄마와 자녀들까지 영문도 모른채 짊어져야 했던 굴레였다. 그들을 모두 합친 숫자는 114만 4000가구. 이들 가구 자녀를 1명으로만 계산해도 228만 8000 명이다.
정부도, 기관도 그냥 “OO씨”라고 부르세요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는 있다. 올해부턴 ‘한부모가족의 날’도 생겼다. 정부도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직 잘 느끼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이슬비씨~ 슬비언니~ **엄마~ 하고 부르지 미혼모 이슬비씨! 미혼모 슬비언니~ 하고 부르지 않기 때문에 이 호칭이 저에게 큰 불편함이나 차별을 주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위한 지원을 받거나 저희를 지원하고자 하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미혼모 당사자’혹은 ‘양육미혼모’라는 표현들을 쓰기 때문에 가끔 낯선 경험을 하게 된 적은 있습니다.올 여름에 함께 갔던 오션월드 행사에서 잘 놀고 나왔는데, 인솔하시던 선생님이 문 앞에서 사진 찍어야한다며 미혼모 지원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는 순간에 출구로 빠져나오던 이용객들 시선이 동시에 저희 쪽을 향해 머물렀고, 같이 있던 엄마들의 시선은 땅 아래나 옆으로 돌려지면서 머뭇거리던 게 생각났습니다.”
(2017년 12월 111차 양성평등정책포럼, 사례 발표자 이슬비 씨의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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