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는 당시 세계 어느 곳보다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민간을 중심으로 금융, 직물 산업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것이다. 이 때 부유해진 네덜란드 인들의 관심을 모은 대상 중 하나가 튤립이다.
터키가 원산지인 이 꽃은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문제는 튤립이 감상의 영역을 벗어나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로 꼽히는 ‘튤립 파동’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튤립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까지 치솟았다. 소수의 희귀종에 한정된 사례이긴 하나 한 뿌리를 팔면 암스테르담의 대저택을 사고도 남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초고가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구입하고도 돈이 남았던 셈이다.
물론 이런 광풍은 오래갈 수 없기에 가격은 폭락했는데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결국 정부가 개입해서 일정 시점 이전에 맺어진 매매계약을 전무 무효로 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이후에야 겨우 진정됐다고 한다.
지금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겠으나 이런 바보 같은 일은 이후에도 자주 반복됐다.
가장 최근 시점의 ‘바보 같은 일’은 1990년대 후반 기술주 버블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익을 1원도 남기지 못하는 기업들의 주식이 인터넷사업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기술주 버블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지난 지금 그 주식들의 현재를 보도록 하자.
당시 인기를 모으던 수많은 대상 중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기업은 필자의 기준으로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정도에 불과하다(한국에서는 네이버를 꼽을 수 있으나 네이버가 상장된 것은 기술주 버블이 끝난 후인 2002년 가을이다) 그 외의 무수한 기업들은 투자자의 돈을 허공으로 뿌리면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시장을 보면 ‘바보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무인주행, 인공지능 등 듣는 것만으로도 투자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들이 주식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번에도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매년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음주운전은 사라질 것이며 부모의 허리를 졸라매며 영어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시대가 온다는 것과 내가 투자한 기업이 돈을 잘 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소중한 내 돈을 투자한 기업이 아마존이 될 것인지 아니면 소리 없이 사라진 무수한 기업이 될 것인지를 지금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어떤 기업이 20년 후에 지금의 아마존 같은 존재가 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이다.
국내시장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증시와 동조화가 진행되면서 국내시장에서도 성장주 프리미엄이 상당부분 반영됐다.
향후에는 실질 수요가 발생해 경기 성장을 뒷받침하고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성장주보다는 가치주들이 더 주목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저평가된 중소형 가치주나 내수주 등 아직도 PER 8배 이하, PBR 1배 미만 기업들의 투자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시장이 얼마나 오르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목을 골라내느냐이다. 테마주에 휩쓸리지 말고 기업의 가격, 경쟁력, 성장 가능성을 따져 우량 중소형주를 가려낼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장기투자도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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