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올드 바둑팬이라면 우칭위안(오청원ㆍ吳淸源ㆍ사진) 선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현대바둑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기타니 미노루 9단과 함께 ‘신포석’을 제창, 바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이다. 특히 1940∼1950년대 치수고치기 10번기를 통해 일본의 정상급 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 일은 전설처럼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올 정도로 바둑계에선 우상이다. 우칭위안 선생은 장수 기사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100세 탄생을 맞았다. 이에 중국은 물론 일본 바둑계에서도 축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지난 1914년 음력 5월19일(양력으로는 1914년 6월12일)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 출신인 우칭위안 선생은 바둑을 좋아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일곱살 때 바둑을 배웠고, 1928년 일본의 세고에 겐사쿠(瀬越憲作ㆍ1889∼1972) 문하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시작했다.

1933년 기타니 미노루(木谷實ㆍ1909∼1975) 5단(당시)과 함께 ‘신포석(新布石)’을 발표했고, ‘흉내 바둑’, ‘3三ㆍ화점ㆍ천원 착점’ 등 반상에서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하며 현대 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다.

특히 1939년부터 시작된 기타니 미노루 7단(당시)과의 치수고치기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 1인자에 올라섰고, 이후 1956년까지 이어진 가리가네 준이치(雁金準一), 후지사와 구라노스케(藤澤庫之助),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이와모토 가오루(岩本薰) 등과의 치수 고치기 십번기에서도 잇달아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11차례 이어진 10번기 총 전적은 10승 1무 1패.

우칭위안 선생은 1983년 기사직을 은퇴했으며, 문하에 린하이펑(林海峰)․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두고 있다.

이에 지난 7일 우칭위안 선생이 거주하고 있는 일본 가나가와 현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딸 가쓰미 씨와 제자들이 모여 우칭위안 선생의 천수(天壽)를 축하했다. 다음달 23일에는 요미우리 신문사 주최의 백수(百壽) 축하연이 도쿄 치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요미우리 신문사 본사에서 별도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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