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막드(막장드라마)의 여신’을 품은 KBS2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가 엄청난 전개 속도를 선보이며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뻐꾸기둥지’는 ‘대리모’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새로운 복수극의 시작을 알렸다. 10회분이 전파를 탄 16일 방송에선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 이채영을 통해 본격적인 복수의 막을 올렸다. 이미 전회 방송에서 이화영 역을 연기하는 이채영은 대리모 출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 6년 만에 서울 땅을 밟았다.
드라마의 시작은 간단히 말해 대리모가 된 이화영의 복수혈전이다. 화영의 친오빠는 어느날 갑자기 오토바이 사고로 숨을 거뒀다. 분명 사고였지만, 화영은 이 사건을 ‘살해’라고 믿는다. 오토바이로 여자친구의 뒤를 따라가던 중 벌어진 사고였고, 충격적인 사고 이후 오빠의 여자친구는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이 정도로 복수를 시작하기엔 강도가 약하다. ‘뻐꾸기둥지’는 화영의 오빠가 사랑한 백연희(장서희 분)와 화영이 사랑한 정병국(황동주 분)을 커플로 맺었다. 복수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분노만을 공기 삼아 살아갔던 화영에게 복수의 기회가 온 것은 뜻밖의 제안 덕분이였다. 오빠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던 화영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카페 여사장의 시누이로부터 이색적인 제안을 받게 됐다. 대리모가 돼달라는 제안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여성으로 받은 제안은 아무리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화영으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대리모 제안을 한 사람이 ‘복수의 대상’이 될 두 남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됐다.
긴박하게 흘러왔던 ‘뻐꾸기 둥지’는 그간 이채영의 사정과 대리모 제안 수락과정,백연희(장서희 분)의 난자와 자신의 것을 바꿔치기해 아기를 낳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 9회분 말미 시간은 6년 뒤로 훌쩍 넘어갔고, 화영은 10회분을 통해 갑자기 성공한 여성이 돼 두 사람 앞에 등장했다. 6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날 방송에서 화영의 옛 연인 정병국은 아직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파멸의 아이콘’이 돼 돌아온 화영은 본격적으로 정병국을 유혹할 치명적인 매력 발산을 시작했다. 사업상 만나는 파트너임에도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부러 수영장으로 정병국을 끌어들이며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백연희와의 본격적인 맞대결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으로 백연희가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간 화영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현재의 전개속도라면 화영의 ‘정체 알리기’ 역시 ‘초읽기’인 상황이다.
화영이 복수극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백연희의 가정엔 균열이 생기고 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두고 일에 몰두하는 며느리가 못마땅하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아내가 서서히 참기 힘들다. 성공해 돌아온 ‘진짜 엄마’ 이화영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이 잘 짜여진 상황이다.
‘뻐꾸기둥지’는 현재 ‘일일극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지나치리만치 악에 받힌 여주인공과 그의 모습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갈등의 과정, 지나치리만치 진부한 스토리와 작위적인 구성이 그렇다. 이미 시청자 게시판엔 “억지스럽다”, “자기가 사귄 여자도 못 알아보냐”는 반응부터 “대리모 스펙이 너무 현실성이 없다”며 캐릭터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반응까지 올라온다. 그러면서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 엄청난 전개속도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시청률 변화 추이도 긍정적이다. 특히 이 드라마에선 일일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독특한 변화 또한 읽힌다. 최근 일일극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넘어 황당무계한 설정과 뻔한 스토리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시청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기고 있다. SNS에는 소위 ‘막장’으로 불리는 아침, 저녁 일일극의 영상이 공유되며 유저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유머 한 토막으로까지 활용된다. “논리와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빚어지는 현실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일극은 도리어 시청자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윤석진 충남대 교수) 해석도 이 때문에 나온다.
‘뻐꾸기둥지’의 경우 자극적인 소재로 드라마를 시작해 어김없이 복수극을 그려갈 예정이지만, 이제서야 10회분이 방영됐을뿐 본격적인 막은 올리지도 않았다. 평균 100회분까지 진행되는 일일드라마에 비춰본다면 고작 10분의 1을 내디뎠고, 드라마 안의 비중으로 본다면 ‘막장의 여신’ 장서희는 본격적인 연기 기지개를 켜지도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시청자에겐 ‘막장드라마’마저도 “하나의 장르와 소재”로 만든 전무후무한 배우 장서희가 ‘뻐꾸기둥지’를 어떤 연기로 소화할지 호기심을 불러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관건은 ‘설득력’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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