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슈섹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존할 당시 후계자로 3남인 김정은이 아닌 장남 김정남을 선호했다고 한국일보가 20일 보도했다. 매체는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확인한 외교전문에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 문서는 미국 상하이 총영사관은 2006년 9월 워싱턴 국무부에 보낸 것으로 ‘중국 당국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남의 등극을 원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다.
매체에 따르면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 공사는 중국의 저명 학자들의 말을 인용했다. 글에는 김정일의 세 아들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장남 김정남은 지나친 플레이보이”이고, 차남 김정철은 “국정보다는 비디오 게임에 더 관심이 있으며”, 3남 김정은은 “그저 지금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평가했다. 김정철과 김정은에 대해 “경험이 너무 부족하고 효과적인 통치를 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외교전문은 북한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당시 언론들의 후계구도 관련 보도들에 대해 “중국 학자들은 그저 추정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10여년 전 작성된 문서에는 김정남의 등극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도 설명했다. 매체에 따르면 “만일 김정일이 5년 또는 10년 더 생존한다면 베이징은 알지 못하는 군부와 민간인들이 대행하는 방식보다는, 이미 입장이 확실한 김정남의 등극을 선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정남은 1971년 김정일과 영화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한 김일성 일가 내 장남으로 세습권력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꼽혀왔다. 김정남은 1980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난 이후 1981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견문을 넓히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1997년에는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으로부터 경제를 배웠으며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핵심 요직도 맡고 1998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북한의 각종 정보기술(IT) 산업정책을 주도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가 김정일의 뒤를 이어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될 거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김정남은 2000년대 초부터 급격히 후계구도에서 밀렸다. 2001년 5월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중국으로 강제 출국되기도 했으며 이후 김정남은 북한에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3대 세습을 반대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고,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돌출 행동을 보여 북한 당국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동생 김정은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줬고,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껴 마카오를 떠나 싱가포르로 옮겼다. 당시 남한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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