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10조원 벌금폭탄…국익보호 여론 확산에 고심

프랑수아 올랑드<사진> 프랑스 대통령이 ‘BNP파리바’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올랑드는 최근 미국으로부터 10조원대 벌금 폭탄을 맞게 된 프랑스 최대은행 ‘BNP파리바’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태가 프랑스와 미국의 자존심 대결로 비화되면서, 그동안 금융업계에 대한 발톱을 세워왔던 올랑드 대통령으로선 ‘국익’과 ‘금융규제’라는 대의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할 입장에 처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1일(현지시간) “BNP파리바가 미국 사법 당국으로부터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자 프랑스 전역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면서 “올랑드 대통령에게 ‘미국의 맹습’으로부터 프랑스 최대 은행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9일 미국 법무부가 경제 제재를 무시한 채 수년 간 이란, 수단, 쿠바 등과 금융거래한 BNP파리바에 100억달러(약 10조2030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미국 법무부가 부과한 형사 벌금 액수로는 지난 2012년 석유기업 BP가 합의한 벌금 40억달러를 넘어서는 사상 최대 규모로, BNP파리바의 연간 수익과 맞먹는 액수다.

프랑스에서 이번 조치는 금융기관을 둘러싼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를 보여준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BNP파리바의 거래가 자국법은 물론 유럽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과 달리, 미국 법무부는 BNP파리바의 금융거래가 달러화로 성사된 만큼 자국의 사법관할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선 미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중도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자케스 미야드 의원은 “이번 사건은 법과 상업 부문에서 나타나는 미국 정부의 패권적 야욕의 일부”라면서 “미국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사법권 밖에서 자국의 법을 적용하고 힘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지난달 30일 웹사이트에서 성명서를 내놓고 올랑드 정부에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FN은 미국 정부가 자국의 금융기관을 원조하려는 목적으로 BNP파리바를 “갈취하고 있다”고 맹비난한 뒤, “프랑스 정부는 나태해져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칼럼니스트 장 밥티스트 자캉은 이번 사건이 ‘달러의 제국주의’를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르몽드는 지난달 31일자 기사에서도 벌금 조치가 미국 정부의 ‘능수능란한 일격’이었다고 거듭 비판했다.

또 중도우파 계열의 일간지 르 피가로는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는 미국 은행들에 대해 관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BNP파리바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밖에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그동안 돈세탁이나 조세 회피에 연루됐던 은행들의 벌금 액수는 훨씬 낮았다면서 “미국이 (BNP파리바에만) 지나치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올랑드 대통령이 좌시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일단 이번 사건을 법적 문제로 둬야한다는 입장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이는 금융기관에 대해 부정적인 올랑드 대통령의 시각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운동 때 금융업계를 ‘진정한 적’이라고 표현하며 공공연히 적개심을 드러낸 바 있다.

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