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구어체 절묘한 동거 올 마지막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무대 18년차 배우 문근영의 ‘철부지 줄리엣’ 짠한 슬픔 연기 압권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 기념 공연의 마지막 타자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맡았다.

이달 9일부터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공연 전부터 스물아홉 동갑내기 배우인 문근영ㆍ박정민이 주역에 캐스팅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문근영은 2010년 ‘클로저’ 이후 6년만에 연극무대에 섰고, 박정민은 영화 ‘동주’와 드라마 ‘안투라지’로 이름을 알린 충무로 신성이다.

뚜껑이 열린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과 현대극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운문체의 대사를 차용하면서, 관객들의 눈에 맞추기 위해 현대적 요소를 집어넣다보니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구어체 대사가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운문체 대사가 나타나는 식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영국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시어터 연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줄다리기’는 상당히 성공적이다.

줄거리도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다. 베로나지역의 명문가문인 몬테규가의 후계자 로미오(박정민)는 또다른 명문가문이자 원수인 캐플릿가의 무도회에 친구들과 함께 몰래 들어갔다가 캐플릿가의 외동딸인 줄리엣(문근영)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음날 부부의 연을 맺지만,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죽인 죄로 시에서 추방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줄리엣은 정략결혼 상대와 원치 않는 혼인을 하게 될 처지에 놓인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양정웅 연출가는 리듬감 있는 화면전환과 속도감 있는 대사로 경쾌하게 극을 바꿨다. 특히 로미오와 그의 친구 머큐쇼(김호영ㆍ이현균)이, 벤볼리오(김성철)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극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실은 내가 베로나의 ‘비선 실세’지”, “(관객에게)아가씨, 너무 이뻐서 봐주는 거야” 등 현대식 농담은 관객을 편안하게 웃음으로 안내한다. 더불어 손병호(로렌스 신부역), 서이숙(유모 역) 등 관록의 배우들이 극의 중심추 역할을 하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더 익숙한 주연배우들을 뒷받침한다.

무대 디자인은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공간 활용으로 정평이 난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푸른색을 주색으로 하는 무대는 간결하고도 빈틈이 없었다. 더불어 객석까지 무대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관객을 좀 더 극에 밀착시키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다만 ‘역대 가장 섹슈얼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컨셉 때문인지 키스장면이 잦아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또한 ‘문근영’만 보고 극장을 찾았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 원작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다. 원작에서 줄리엣은 바람둥이 로미오를 구워 삶아 하룻밤에 ‘결혼’의 족쇄까지 채우는 당차고도 능수능란한 여성인데, 문근영의 줄리엣은 ‘철부지 아가씨’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로미오를 잃은 뒤 온 몸으로 슬퍼하는 그의 연기는 18년차 배우답게 관객으로 하여금 ‘짠함’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공연은 내년 1월 15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VIP석 6만6000원ㆍR석 5만5000원ㆍS석 3만3000원이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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