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 들어본 기부관행 해법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의 기부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국내 굴지 19개 그룹, 53개 기업이 한국문화의 세계 전파에 보탬이 되겠다고 774억원의 기금을 조성, 설립했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결국 권력실세의 이권사업에 쓰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현존하는 권력 실세를 향한 뇌물 또는 보험 성격의 이 같은 기부행위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력은 예산부족의 이유를 대거나,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기업에 손을 벌렸다. 또 권력의 힘을 믿었던 기업들은 이에 굴복, 주머니를 털었다. 강압에 의한 기부는 관행처럼 이어졌다. 5공화국 시절 일해재단 비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부 행위는 언제나 논란을 불렀고, 관련자들은 훗날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했다.
이같은 기부관행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기업이다. 순수한 목적의 기부행위마저도 정경유착으로 의심받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한 ‘2015 주요 기업 및 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200여개 기업이 한 해 동안 지출한 사회공헌 금액은 2조6708억원에 달한다. 이는 세전이익 대비 3.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7.7%는 소위 시민단체로 불리는 각종 단체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집행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낸 돈도 13.7%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은 이번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빛이 바라게 됐다.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해체압박을 받았던 전경련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은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을 담당하는 창구를 자처하며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벌여왔다. 1995년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민간의 대북지원을 허용하자, 1997년 대한적십자사의 대북지원 협조 요청에 응해 대북 곡물지원을 결정한다. 참여정부 들어선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소기업협력센터를 출범해 2005년 ‘대 중소기업 협력기금’ 215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 1999년 사회공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7년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말 모금활동의 모테가 된 모금행사를 주도했다. 이밖에도 정부를 대신해 의료보험사업 추진의 구심체로 나서 전국의료보험협의회(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특허협회,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한국개발금융회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정부나 권력 기관이 사실상 주도하는 ‘준조세’, 혹은 ‘정치자금기부’ 성격의 기금모집 행위만 없다면 자발적인 사회공헌사업을 더 확대할 수 있다며 ‘피해자’임을 호소한다. 실제 전경련이 최근 대기업 255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업의 40.3%는 사회공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외부의 선심성 지원 요구’를 꼽았다.
이에 대해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이지만 국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까 재계에 손을 벌리면서 발생하는 일”이라면서 사태원인을 분석한 뒤 “기부 및 준조세 투명화 법을 만들어 기업의 기부행태를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야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보다 활성화되고, 정경유착의 유혹도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강력한 법을 만들어서 공직자는 절대 기업에 기부금 요구할 수 없도록 해야한다“고 밝혔다.
법적, 제도적 개선 못지않게 기업 스스로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바뀌는 걸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업의 변화를 끌어내는 게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나 권력의 기금조성 요구가 있을 경우 반드시 이사회 의결이나 투명경영위원회의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와 회원 기업 간 의사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 스스로 바람막이가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논란은 전경련 스스로 바람막이 되지 못해 나온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최정호ㆍ배두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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