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4000억달러(약 410조원) 규모의 가스딜 최종 승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신(新) 밀월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관심을 모았던 천연가스 공급 협상에서 양국이 결국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배짱’에 ‘만만디(慢慢的)’로 맞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 치의 양보 없는 혈전을 벌였다는 평이다.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참석차 중국 상하이(上海)를 찾은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20일(현지시간) 중ㆍ러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즈프롬이 향후 30년 간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에 공급하는 총 4000억달러(약 410조원) 규모의 협상을 벌였지만 최종 결론엔 도달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실제 이날 오후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등이 정리한 회담 발언록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천연가스 수출 문제에 대해 “상호이익과 상호혜택의 원칙에 근거해 조속히 최종 협의를 달성하자”고 말했다. 회담 이후 양국 정상이 서명한 국방, 에너지, 교통, 금융 등 49개 부문의 협력문건에도 가스 수출계약은 빠졌다.

양측이 계약서에 사인하지 못한 것은 가스가격에 대한 입장차가 확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예상외로 강경한 자세로 나왔다는 분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푸틴이 가스 공급가를 낮춰달라는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유럽 공급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 평균 공급가는 1000㎥ 당 380.5달러로, 중국이 투르크메니스탄에 내는 가격 350달러보다 비싸다.

러시아 컨설팅 기업 매크로어드바이저리의 설립자인 크리스 웨퍼는 블룸버그 통신에 “러시아가 서방과의 정치적 문제 때문에 가격을 낮춰 협상을 성사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만약 올해 계약이 타결되지 않으면, 중국은 가스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도 급할 것이 없다. 그동안의 에너지 수급 노력 덕에 당장 필요한 천연가스를 충당할 여력을 갖춘 상황에서, 굳이 비싼 러시아산 가스를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의 이토 쇼이치 선임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이미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최근엔 미얀마에서도 충분한 가스를 확보해 2020년대 중반까지는 끄떡없다”면서 “러시아가 가격에 대해 양보하지 않는 이상 중국이 서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블룸버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관계가 뒤바뀌게 됐다고 분석했다.

과거 동서 냉전시기 스탈린이 공산주의 진영을 이끌고 마오쩌둥(毛澤東)이 뒷받침을 했다면, 최근엔 급속 성장한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트레닌 모스크바 카네기 센터 소장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대중 관계의 중요성이 커졌다”면서 “중국이 러시아를 누르고 더 큰 권력을 쥐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