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경유 거래 후폭풍…합의 효과는
내달 공급 합의한 러시아 경유 50만t
다 풀려도 세계 수요의 4%도 못미쳐
정유시설 45% 차질, 공급능력도 의문
트럼프 “러·우 에너지 휴전” 주장에
젤렌스키 “금시초문”…러, 추가 공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4년 넘게 제재를 받아온 러시아와 대규모의 경유 거래를 체결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고유가·고물가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성급히 러시아의 경유 공급이란 수를 냈지만, 유가 안정이라는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공습으로 러시아 정유 능력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 데다, 러시아가 약속한 공급 물량도 전 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과 세계 시장에 대규모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러시아가 전 세계 시장에 30만톤 이상의 경유를 즉시 공급하고, 다음달 중에 50만톤, 그 직후엔 100만톤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라고 전했다.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300만톤의 경유를 더 공급, 총 480만톤의 러시아 경유가 시장에 풀릴 것이라 전했다. 미국은 이번 합의로 대(對)러 제재도 일부 완화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해당 합의가 실제 가격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경유 수출을 재개하더라도 세계적인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FT는 러시아가 미국에 다음달까지 약속한 경유 50만톤을 모두 수출하더라도 전 세계 경유 수요의 4%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실제 공급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FT는 “우크라이나의 공습 강화로 러시아 전체 정유 능력의 최대 45%가 가동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이로 인해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최악의 휘발유 부족 사태를 겪고 있으며, 인도 등 해외에서 연료를 수입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고 설명했다.
정유 시설이 파괴돼, 자국 연료도 부족해 해외에서 수입하는 러시아가 약속한 물량을 기한내에 생산해 수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합의 규모의 경유 공급이 가능하려면 러시아 정유시설의 보수 작업이 완료되고 생산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유 분석업체 실라AI의 블라디미르 니키틴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의 공습이 현재 속도로 지속된다면 러시아가 자국 시장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이 정도 물량을 수출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공수표’가 의심되는 경유 거래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법률 위반 사항이 아니고, 유가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고 항변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법적 권한을 활용해 (경유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며 “미국 국민에게 좋은 일이며, 경유 가격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해당 합의를 “악마와의 거래”라 비판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의원 4명과 민주당 의원 3명 등 상원의원 7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 의회는 미국의 자금이 푸틴 대통령의 잔혹한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22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계속 살해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푸틴 대통령에게 재정적 생명줄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라며 해당 거래를 철회하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거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SNS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에너지 휴전이 이뤄졌다”며 이는 즉각적으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호 에너지 시설 등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로는 합의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나로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면서 “(하지만)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에 동의한다면 우크라이나도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발전소를 공격해, 사실상 이를 부인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의 열병합발전소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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