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평양 IPO팀 인터뷰
신희강·정희석·하영진·현예림 변호사
규제범위 확대로 자회사 상장 문턱 높아져
지배구조·모회사 주주 영향 등 검토 필수
해외 IPO도 중복상장 규제 우회 쉽지 않아
노력의무·M&A 등 다각적 회수 경로 모색
중복상장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되면서 국내 자본시장 지형은 격변기를 맞이했다.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구축됐던 인수·합병(M&A), 프리IPO(상장전지분투자), 재무적투자자(FI)의 투자금 회수(엑시트) 구조 등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16일 법무법인 태평양 IPO팀 신희강·정희석·하영진·현예림 변호사를 만나 중복상장 규제 이후 자본시장의 변화와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
태평양 IPO팀은 규제 이후 자회사 IPO가 일종의 ‘지배구조 거래(governance transaction)’로 변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자회사 IPO가 더 이상 해당 자회사의 상장 적격성만으로 판단되는 개별 거래가 아니라, 모회사 일반주주의 이해관계와 그룹 전체의 자본 배분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적 거래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태평양 IPO팀을 이끌고 있는 신 변호사는 “중복상장 규제가 자회사 IPO 자체를 원천 제한한다기보다 상장의 필요성과 주주보호의 적정성을 충실히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모회사 이사회 차원에서 상장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주주 소통을 이행해야 하므로 예비심사 청구까지의 거래 구조, 준비 기간 및 비용 등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해외 소재한 자회사를 해외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경우라도 중복상장 규제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주주 영향평가·보호방안 마련 등 5대 의무는 원칙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가 해외 상장 여부를 직접 차단할 수는 없지만, 국내 상장 모회사가 관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변호사는 “해외 상장에는 지배구조를 포함한 현지 상장 요건이나 일정 충족, 증권신고서 제출, 국내외 공시시점 조율, 외환·세무 리스크 등 다양한 과제가 수반된다”면서 “국내 상장의 대안으로 해외 상장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용이한 선택지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중복상장 규제는 자본시장 생태계 전반의 투자 계약 조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프리IPO 투자 계약은 일정 시점까지 IPO 추진·완료를 의무화하고 실패 시 풋옵션이나 수익률을 보장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하 변호사는 “향후 프리IPO 계약에서는 IPO 실패의 원인이 대주주·회사 측의 귀책 사유인지, 혹은 시장 환경이나 규제 변화에 따른 것인지에 따라 풋옵션 등 투자자 보호장치의 발동 조건과 수위를 달리 정하는 세밀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미 체결된 투자 건에 대해서도 IPO 기한 연장 및 기존 풋옵션·수익보장 조항이 재검토되는 분위기다. IPO 달성이 불투명해 보이면 제3자 매각, 드래그얼롱(동반매각청구권) 요건 보완, 일부 지분에 대한 사전 유동성 제공 등 현실적인 대체 경로가 논의되는 것이다.
자회사 상장 문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증권사와 한국거래소는 새로운 상장 후보군을 발굴할 유인이 커졌다. 중복상장 이슈 영향이 적은 독립 스타트업이나 가족기업, 외국 기업 등이 주요 타깃으로 꼽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달 18일 미국 기업으로서 코스닥 시장 상장을 완료한 바이오테크 기업 ‘인제니아테라퓨틱스(INGENIA Therapeutics)’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제니아테라퓨틱스는 국내 상장사의 해외 자회사나 계열사가 아닌, 미국 보스턴에서 독립적으로 설립·성장한 ‘순수 해외 기업’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정 변호사는 “인제니아테라퓨틱스는 사업과 연구개발(R&D)이 미국 중심이지만, 원천 기술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출발해 국내 투자자들의 이해도가 높았던 사례”라며 “국내 시장 상장 추진 과정에서 미국 델라웨어 법인의 지배구조와 공시 체계를 한국거래소 기준에 맞춰 조화시키고, 미국 주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주식예탁증서(KDR) 발행 및 결제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 IPO팀은 외국 기업의 국내 상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거래소 심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 변호사는 “외국 기업 상장 과정에서 실제 어려움은 하나의 규제를 충족하는 데 있다기보다, 본국법에 맞춰 이미 구축된 정관·이사회·위원회·스톡옵션 제도 등을 한국 제도에 맞게, 한국거래소나 한국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설계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규제 시행 이후 IPO 자문의 성격 자체도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장 규정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는 단편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상장의 경제적 효과와 지배구조 설계, FI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 조정은 물론 IPO 무산에 대비한 대체 자금조달과 M&A 구조까지 함께 다루는 ‘통합 자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최근에는 IPO의 법적·제도적 요건을 검토하는 것에 더해 해당 거래가 회사와 일반주주 모두에게 왜 합리적인지 객관적 자료와 적절한 절차를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기업법무팀, 자본시장팀과의 협업을 통해 개별 선례와 적용 기준을 분석하고, 기업이 주주보호 의무를 절차에 맞춰 이행하며 상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법인 태평양 IPO팀은 국내외 기업의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과 기술특례상장, 외국 기업의 국내 상장, 프리IPO까지 기업공개 전반을 자문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LG에너지솔루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IPO를 비롯해 최근에는 케이뱅크와 인제니아테라퓨틱스의 상장 자문을 맡았다. 안효정·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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