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부결 후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
규제정비 의회서 정부기관 중심으로 이동
국내 입법 늦출 요인으로 평가되지는 않아
국감·예산안 정국 돌입 전 발의 여부 관건
제도 공백 길어질땐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
[헤럴드경제=경예은 기자]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미 상원에서 본격적인 심의로 넘어가기 위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화당이 민주당의 요구를 반영해 공직자 윤리 규정 등을 담은 수정안까지 내놨지만 끝내 초당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법안의 연내 처리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 미국의 입법 지연이 한국의 디지털자산기본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지만 국내에서도 제도 정비가 더 늦어질 경우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클래리티법에 대한 클로처(토론종결) 표결을 진행했으나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이번 표결은 법안의 최종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은 아니다. 클로처는 상원 내 토론을 마치고 법안 심의를 계속할지를 가르는 절차다. 다만 이날 찬성표가 과반을 채 넘기지 못하면서 중간선거를 앞둔 현 회기 내 법안을 다시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클래리티법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권을 규정하고 디지털자산 사업자 등록 요건과 자금세탁방지 규정 등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를 담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한 데 이어 클래리티법을 통해 디지털자산 시장 전반의 규제를 정비하려 했다.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전날 공개한 635페이지 분량의 최종 수정안에는 공직자가 대가를 받고 디지털자산을 직접 발행하거나 후원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관련 사업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직 윤리 규제 강화에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법무장관의 집행 권한도 확대됐다. 윤리 규정 위반과 관련해 주 법무장관이 미 연방 법무장관을 상대로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상장 금지 규정을 위반한 거래소 등 중개업자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의 디지털자산 사업을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를 막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공화당이 내놓은 절충안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14억달러의 디지털자산 수익을 올리는 것을 막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장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윤리 조항의 집행 구조와 월드리버티파이낸셜 등 트럼프 일가의 디지털자산 사업과 관련한 예외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이번 표결 실패로 미국의 디지털자산 규제 정비는 당분간 의회보다는 SEC와 CFTC 등 규제기관 중심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SEC는 최근 디지털자산 프로젝트의 토큰 발행에 대한 등록 면제 체계를 담은 규제안을 공개했고 CFTC 역시 기존 권한을 활용한 시장구조 규제 마련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서는 규제기관의 규칙만으로는 장기적인 규제 확실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부 교체에 따라 규제 방향은 쉽게 달라질 수 있어 시장구조를 법률로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클래리티법 부결 이후 디지털자산 시장도 약세를 이어갔다. 16일 오전 9시22분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7만5675달러로 24시간 전보다 3.59% 하락했다. 이더리움은 5.22% 내린 2398달러, 리플(XRP)은 10.22% 급락한 1.28달러에 거래됐다. 솔라나도 5.57% 떨어진 97.11달러를 기록했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는 클래리티법 부결에 대해 “이번 결과는 정말 뼈아프다”며 “이번 기회는 리플뿐 아니라 업계 전체와 소비자, 그리고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중심지이자 미래 금융의 리더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탄식했다.
이날 표결이 부결됐지만 법안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미 상원 규칙상 부결된 안건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클래리티법 제정 지연이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금융당국이 규제 정합성 측면에서 해외 주요국의 논의를 참고해온 만큼 이번 부결로 살펴봐야 할 쟁점은 늘었지만 국내 입법을 추가로 늦출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이미 기본법 추진 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여당과 협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안을 유동수 국회 정무위원장 명의의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으나 당정청 차원의 정책 조율이 이어지면서 일정도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정부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 등 정기국회 일정과 맞물려 연말까지 법안 논의가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주 금융위 측이 정무위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관련 사안을 설명하는 것으로 안다”며 “새로운 구성에서 (국회와) 컨센서스를 갖추고 제도화 논의를 본격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법제화 논의가 더 늦어질 경우 해외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제도 정비를 바탕으로 사업자 간 다양한 협업이 이뤄지는 만큼 국내 사업자들도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중 디지털자산기본법 관련 공청회를 열고 국정감사 이후인 11월부터 본격적인 법안 심의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언컨대 올해 안으로 기본법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번 달 정도 공청회를 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 의원은 “국정감사가 끝나면 11월 정도부터 아주 본격적인 법안 심의를 할 것이라고 본다”며 “(법안 제정을 위한) 한 단계가 그어지는 것이 11월 또는 1월 초라고 생각하면 되고, 그 전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kyou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