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ST, 빛 입자 1개로 과산화수소 2개 생산
- 초고속 실험과 AI 기술로 최적 반응액 개발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국내 연구진이 수처리, 살균, 반도체 세정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과산화수소를 현장에서 바로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후환경연구소 물자원순환연구단 변지혜·정재식 박사 연구팀은 초고속 실험과 인공지능(AI)을 결합, 빛으로 현장에서 과산화수소를 고효율 생산하는 새로운 반응 용액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빛으로 과산화수소를 만드는 기존 광촉매 방식은 빛을 받은 촉매에서 생긴 전자가 산소와 반응해 과산화수소를 만든다. 하지만 빛 입자(광자) 1개가 한 번의 반응만 일으켜, 광자 1개당 과산화수소 1개를 만드는 효율 100%가 사실상 상한이었다. 생산 효율을 높이는 데 한계로 작용했던 지점이다.
연구팀은 한계를 넘기 위해 한 번의 빛으로 반응이 계속 이어지는 ‘연쇄 반응’에 주목했다. 도미노처럼 첫 반응이 다음 반응을 연속해서 일으켜 광자 하나로 여러 개의 과산화수소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빛을 흡수해 반응을 시작하는 물질, 수소를 제공하는 물질, 이들이 잘 반응하도록 돕는 용매를 섞은 용액을 만들었다. 초고속 대량 실험(184개 조건, 5888회 실험)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을 결합해 연쇄 라디칼 반응을 최적으로 유도하는 ‘유기 반응 용액’ 조합을 발굴했다. 이 용액은 빛 에너지를 받아 도미노처럼 반응이 이어지는 연쇄 광화학 경로를 활성화함으로써, 기존 광촉매의 한계를 깨고 세계 최고 수준인 219.1%의 양자 효율(빛 입자 1개로 과산화수소 2개 이상 생성)을 달성했다.
특히 리터(L) 급 대용량 반응기에서 30시간 이상 고순도(약 1%, 291mM) 과산화수소를 안정적으로 연속 생산해 산업적 확장성을 증명했다. 환경호르몬(비스페놀 A)을 6시간 만에 99.95% 이상 분해하는 수처리 성능과 기존 공정 대비 독성을 90% 이상 줄이는 친환경성을 검증했다.
기존 태양광 촉매 연구가 300W급 고전력 광원을 쓰는 것과 달리, 이번 기술은 그 40분의 1 수준인 4~8W 저전력으로 구동된다. 이는 스마트폰 충전기 수준에 불과해, 정수장이나 하수처리장 등 과산화수소가 필요한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분산형 생산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처럼 대형 공장에서 고농도로 생산해 운송·보관하는 과정도 줄일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에서도 기존 방식보다 적은 화학물질과 단순한 장비를 사용해 담수 생태 독성은 90.9%, 인체 독성은 93.2%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운송·보관 부담도 줄어 중소규모 수처리 시설에서 비용과 안전 측면의 장점이 기대된다.
변지혜 박사는 “정수장·하수처리장의 소독 및 난분해성 오염물질 산화 전처리, 스마트팜의 관개수·배지 살균,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의 세정수 공급이 1차 적용 대상”이라며 “장거리 운송이 없는 분산 생산 구조 자체가 탄소 배출을 줄이고, 난분해성 오염물질을 현장에서 직접 제거함으로써 방류 수질과 수계 건전성을 동시에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Joule’ 최신호에 게재됐다.
nbgko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