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아파트, 10월 1일부터 이주 절차 시작
10년 보유·5년 거주 조합원 지위 승계 가능
“여의도 전세 품귀 씨말라” 실버타운 고민도
“분담금 여력 부족하면 매도 후 증여 선택”
“여기서 노후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이 나이에 파주, 원주까지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타지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눈물 나요.”
[헤럴드경제=윤승현·윤성현 기자] 지난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교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손모(73) 씨는 손에 대형폐기물 신고필증을 들고 있었다. 25년째 이 단지에 거주했다는 그는 이틀 뒤부터 시작되는 이주를 앞두고 가구를 하나둘씩 정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저렴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1억원대 전세를 찾아 파주와 원주까지 ‘원정’에 나섰다.
여의도 재건축 ‘1호’로 꼽히는 대교아파트는 10월 1일부터 본격적인 이주 절차에 들어간다. 단지 곳곳에는 ‘모든 세대가 2027년 3월 31일까지 반드시 이주를 완료해야 한다’는 안내문과 시공사 삼성물산의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대교아파트는 현재 최고 12층, 576가구에서 재건축을 통해 최고 49층, 912가구 규모의 ‘래미안 와이츠’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자문사업 1호 대상지로, 2024년 1월 조합 설립 이후 올해 5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처음이다.
사업 진행 속도도 여의도 일대 다른 재건축 단지와 비교해 빠른 편이다. 조합 설립 이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등 재건축의 주요 절차를 잇달아 밟으면서 약 2년 4개월여 만에 실제 이주 단계까지 도달했다. 통상 정비사업에서 조합 설립 이후 관리처분인가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이주에도 가장 먼저 들어가면서 향후 다른 단지들의 사업 진행 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빠른 사업 속도에 대한 기대감은 집값에도 반영돼 왔다. 지난 7월에는 133㎡(이하 전용면적)가 39억원에, 8월에는 95㎡가 34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거래가 이어지면서, 장기 보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재건축 기대감이 반영된 가격에서 차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대교아파트 매매거래는 총 8건이 발생했다. 30일 네이버 부동산 기준 올라온 매물도 55개에 달한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중복 매물이 상당수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같은 물건을 여러 개씩 올리다 보니 매물이 많아 보인다”며 “실제로는 평형별로 두세 개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매도인은 대부분 조합원 지위 승계가 가능한 고령 장기 보유자다. 대교아파트는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사업지로, 조합설립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승계가 제한돼 있다. 다만 10년 이상 보유·5년 이상 거주 등 특정 요건을 갖추면 예외적으로 승계가 가능하다.
다만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집값, 거래 상승흐름은 주춤해졌다. 여의도동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8·3 세제개편안 이전에는 재건축 투자 기대감에 일주일에 한 건씩 거래가 성사되고 매수 문의도 쏟아졌지만, 지금은 둘 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매수자들도 대출, 보유세 부담 등 걸림돌이 많아지면서 국회 통과가 어떻게 될지 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앞으로 수년간 거주할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다. 대교아파트 앞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다들 여의도에 남아 있길 희망해 이주 수요가 많지만, 전세는 씨가 말랐다”며 “어쩌다 여의도에서 물건이 나와도 예전 매매가 수준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은 당산·마포·영등포 등 인근 지역으로 흩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자녀가 있는 가구는 교육을 위해 목동이나 대치동 이주를, 일부 고령층은 실버타운 입주를 고려 중이었다.
이주 여건에 따라 주민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여의도에서 45년을 거주한 70대 박모씨는 가족이 보유한 아현동 주택으로 이주 예정이다. 박씨는 “대출 없이 갈 수 있어 부담이 적다”며 “분담금이 비싸긴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의도 안에서도 특히 빠르게 진행돼 만족스럽다”며 “다시 돌아왔을 땐 커뮤니티 시설이나 산책로가 잘 마련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중학생 자녀를 위해 일찌감치 목동 전셋집을 마련한 40대 김모씨는 “지금은 30평에 살지만 목동 전세는 10평 줄여 20평으로 구했다”며 “요즘 전세 상황이 안 좋다고 하는데, 한시라도 빠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름에 미리 구했다”고 말했다.
기대보다 부담을 크게 느끼는 주민도 있었다. 그는 “25년 동안 집 하나 들고 있었을 뿐인데, 신축을 받아도 수익이 없어 그 보유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어 철거를 앞둔 단지를 바라보며 “입주까지 최소 6년은 걸린다는데 그때 들어올 수나 있을지 아득하다”고 덧붙였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서는 “사업이 빠르게 진척되자 고령층을 중심으로 고민이 깊었다”며 최근 몇 달의 분위기를 전했다. B대표는 “몇몇 고령 집주인들이 끝까지 가지고 갈지 처분할지 오래 고민했다”며 “분담금을 낼 여력이 부족한 경우 차라리 매도해 자녀에게 일부라도 증여하겠다는 판단이지만, 최근에는 물건을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매물 가뭄에 재개발·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이주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서광채 한양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시장은 전셋집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주비도 많이 안 나와 현금이 없는 주민은 생활 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있어 이주 수요는 큰 고려사항이기에, 전월세난이 심화한 경우 후속 사업장에서 속도 조절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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