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887.8원…2년여 만에 가장 낮아

엔/달러 환율도 급락 뒤 오름세…160엔 육박

확장재정·미일 금리차·잠재성장률 하방요인

시장개입 외 반등요소 없어…추가개입도 제한

日 여행수요↑…최대 여행수지 적자 경신하나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한 미국과 일본의 공동 개입에도 엔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도 재차 하락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미·일 당국의 추가 개입 여력이 제한적인 데다 일본의 경제 기초여건과 확장재정 정책 등을 고려하면 엔화 가치가 추세적으로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엔화 환전 부담이 줄면서 한국인의 일본 여행 수요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원/엔 환율은 887.8원으로 전 거래일(888.4원)보다 0.6원 떨어졌다. 지난 2024년 7월 23일(884.1원) 이후로 약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원화와 엔화의 동조 현상이 강해지면서 원/엔 환율은 950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7월 들어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겹치며 환율이 급락했다. 지난달 3일 963.7원이었던 환율은 약 한 달 만에 7.9% 떨어졌다. 이후 미·일 공동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반등하면서 이달 3일 원/엔 환율도 910.7원까지 올랐지만, 개입 효과가 약해지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 163.9엔까지 오르며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일 공동 개입 이후 이달 4일 157.3엔까지 떨어졌지만, 12일에는 159.3엔으로 다시 올라 160엔 선에 근접했다.

대대적인 시장 개입에도 엔화 가치가 다시 하락한 것은 일본의 경제 기초여건이 엔화 강세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미·일 당국의 추가 개입 외에 엔화 가치를 끌어올릴 요인이 사실상 없다고 보고 있다.

우선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확장재정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엔화 약세를 구조적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카이치 내각은 오는 2027 회계연도를 ‘책임 있는 적극재정 원년’으로 선언하며 2040년까지 인공지능(AI) 등 분야에 370조엔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는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곧 통화 가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도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올렸다.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이지만, 여전히 미국(3.5~3.75%)과의 기준금리 차는 상단 기준 2.75%포인트에 달한다. 일본은행이 앞으로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도 없을 전망이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린다고 해도 한두 번 정도일 것”이라며 “그 정도로는 금리차가 좁혀진다고 볼 수 없다”고 내다봤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도 “금리를 3%에서 3.25% 올리는 것보다 1%에서 1.25% 올리는 상승폭 기준으로는 훨씬 크다”며 “이자 부담 상승 등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낮은 성장여력에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 것도 ‘엔저’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현재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로 추정된다. 다카이치 내각이 경기 확장에 힘을 쏟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가 뚜렷해 성장세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한은은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버블(거품) 붕괴 이후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노동 투입이 줄어 잠재성장률이 하락했고, 디지털 전환도 지연되면서 생산성 개선이 늦어졌다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를 견인하는 AI 분야에서도 유럽과 함께 산업 전환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원/엔 환율 추이에서 관건은 미일 당국의 시장 개입 정도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민혁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달러 환율이 다시 160엔대를 찍으면 미일 당국이 저번보다 더 큰 폭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며 “당분간 엔화 가치가 큰 변동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일 당국이 지난달 말과 같은 대대적인 시장 개입을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환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 개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저번 개입은 그런 점에서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이런 대대적인 개입을 앞으로 다시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화 가치 상승세 지속 여부도 향후 원/엔 환율 추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강세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는 원/엔 환율이 추세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6월까지는 엔화랑 원화가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던 만큼, 한 달 반 정도 되는 기간만 보고 계속 하락할 거라고 얘기하기에는 섣부르긴 하다”고 전망했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엔화 환전 부담이 줄면서 일본 여행 수요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누적 일본 출국자 수는 608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했다.

하반기 일본 여행 수요가 더 늘면 대일 여행수지 적자 규모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여행수지 적자는 57억540만달러로 통계가 집계된 1998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본 여행수지는 코로나19 사태 중이던 2020년(3억6870만달러)과 2021년(1억299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2022년(5억7570만달러) 적자 전환한 뒤 매년 폭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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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t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