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미사고 입원·MRI 치료비 반환 판결
사이드미러 스친 사고에 세 살배기 입원도
고의 입증 난망…고발은 10~20% 그쳐
내달 8주룰 시행되지만…‘역효과’ 우려도
자동차 보험을 둘러싼 한방 과잉진료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법원도 경미한 사고에 대한 불필요한 입원과 검사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입원시키거나 고가의 검사를반복하는 것은 전문적인 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현장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과잉청구가 적발돼도 부당하게 받은 진료비를 돌려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중복 시술을 막을 기준도 강제력이 없다. 보험사기 적발의 핵심은 공·민영 진료데이터 연계 논의 역시 두 달째 제자리걸음이다.
▶경미사고 입원·MRI에 법원 잇단 제동=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최근 경미한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장기·과잉진료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경미한 교통사고로를 당한 환자를 입원시키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까지 한 한의사에게 치료비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한의사가 검사 결과를 토대로 환자의 통증이 사고 때문인지 기존 질환 때문인지에 대해 아무런 전문적 견해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한의사로서 전문적 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역할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외상 흔적이 없는 환자가 통증을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입원시키는 것은 의료전문가로서 합당한 조치가 아니라고 봤다.
비용이 많이 드는 MRI 검사도 증상이 사고로 인한 것인지를 전문적 식견에 따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문 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질환으로 확인되면 입원과 자동차보험 처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미한 후미추돌 뒤 41일 입원하고 96회 통원치료를 받은 50대 남성에게도 법원은 치료비 1210만원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이 남성은 사고로 무릎 인대가 완전히 파열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신체감정 결과 사고와 무관한 기존 질환으로 판단했다.
차량 사이드미러끼리 스친 사고로 30대 부부와 세 살 자녀가 나란히 나흘씩 입원한 사건에서는 1인당 위자료가 15만원만 인정됐다.
▶돌려주면 끝, 처벌받고도 또=문제는 제재가 법원의 판단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손해보함사는 첩약을 미리 대량 조제한 한방병원을 고발했지만, 경찰은 조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속일 의도는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송치했다.
보험사기 혐의를 적용하려면 기망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지만 수사권 없는 보험사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보험사가 불법 행위를 인지하고도 실제 고소·고발까지 가는 경우가 10~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경이다.
면허 제재에도 허점이 있다. 의료인이 연루된 사건은 수사기관이 보건당국에 통보해야 면허 제재 절차가 시작되지만, 이 정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 업계에서는 보험사기나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고도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복 시술을 제한할 기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4년 12월 침·구·부항을 같은 날 모두 시술하는 것은 적정 진료로 보기 어렵다며 이 가운데 2종만 인정하기로 심의했다. 추나요법과 약침을 여러 부위에 동시에 시술해도 1개 부위만 인정한다.다만 이 판단은 구속력이 가장 약한 ‘공개심의사례’에 머물러 있다. 국토교통부 고시나 심평원 심사지침으로 격상되지 않는 한 강제할 수 없다. 이 사이 여러 시술을 한꺼번에 묶어 청구하는 이른바 ‘세트청구’ 진료비는 최근 5년간 연평균 30.3% 증가했다.
▶진료 데이터 공유 논의도 두 달째 제자리=정부는 장기치료 관리 강화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음 달 10일부터 상해등급 12~14급 경상환자가 사고일로부터 8주를 넘겨 치료받으려면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앞서 정부는 2023년부터 치료 기간이 4주를 넘으면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진단서를 18회 이상 제출한 경상환자는 2023년 140명에서 2024년 1~9월 1800명으로 13배 가까이 늘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른바 ‘8주룰’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상환자 대부분이 사고 후 3주 안에 치료를 마치는데, 8주라는 기준이 생기면 그때까지는 치료받아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도 도수치료 한도를 정해 놓자 그만큼은 별도 심사 없이 보장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다”며 “8주룰을 사실상 치료 보장 기간으로 이해하는 병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기를 가려낼 정보 기반 구축도 더디다. 보험사는 병원 내부 자료에 접근하기 어렵다.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이 보유한 진료데이터를 보험사 청구자료와 교차검증하면 허위·과잉청구를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6월 공·민영 데이터 교차검증을 핵심 과제로 내걸고 인공지능(AI) 기반 보험사기 방지체계 구축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다만 출범 두 달이 지나도록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기관이 참여하다 보니 이해관계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출범 이후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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