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방치된 공사장, 큰비에 지반 침하
붕괴 위험 없다지만 안전관리 허점 노출
수년째 공사 멈춘 건축물 서울서만 22곳
“지자체가 실태 파악, 안전관리 강화해야”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이우중 수습기자] “이 길로는 이제 못 다녀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주민센터 맞은편. 버스를 타러 가던 김우금(87) 씨는 가림막에 둘러싸인 공사장 앞 좁아진 인도를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휠체어를 끌던 노인은 차도로 내려섰고 손수레를 끄는 주민들은 건널목을 건너 우회했다.
지난 15일 오전 이 공사장 가장자리 보행로 일부가 갑자기 내려앉았다. 당시 “지반 침하로 위험해 보인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은 통제선을 설치했다.
공사장 맞은편에서 한식뷔페를 운영하는 정봉기 씨는 “15일 오전 6시쯤 출근해 보니 흙이 다 쓸려 내려가 건물 지하 2~3층이 그대로 보였다”며 “보도블록 아래가 허공처럼 떠 있는 것 같아 어린아이가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문제가 발생한 공사장은 2024년 4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공동주택 현장이다. 원래는 청년주택으로 공사가 추진됐다가 일반 공동주택으로 변경됐으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난 등으로 공사가 멈춘 뒤 현재는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하층 구조물과 바닥 콘크리트 공사까지 마치고 2년 넘게 방치돼 있다.
집중호우에 생긴 구멍, 주민들 ‘불안’
이곳을 긴급 점검한 중랑구청과 서울시 건축안전 자문위원들은 이번 침하 원인을 집중호우 자체보다 공사장 내부에 고인 물을 기존 배수관으로 빼는 과정에서 배수량이 배관 용량을 넘어서며 주변 토사가 유실된 영향으로 파악했다. 다행히 공사장 구조물이 붕괴할 위험은 없다고 판단했다. 구청은 문제가 된 지점에 콘크리트를 치고 흙막이 틈새에는 굵은 모래와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보강공사를 벌였다.
사고 구간은 복구됐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사가 2년 넘게 중단된 채 도심에 방치된 건물이어서 비슷한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20년째 인근에서 장사하는 조효묵(66) 씨는 “공사가 시작된 뒤부터 도로가 조금씩 내려앉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비 이후에는 침하가 더 눈에 띄었다”며 “보행로가 막히면서 주민들이 차도 옆 좁은 길로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A씨도 “공사가 몇 년째 멈춘 만큼 관리도 더 철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공사 멈추고 방치된 현장은 느는데
한국부동산원의 ‘공사중단 건축물 4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공사중단 건축물은 22곳으로 2022년(12곳)보다 10곳 늘었다. 15년 넘게 공사가 멈춰 흉물스럽게 남겨진 건축물도 서울에만 4곳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국의 공사중단 건축물은 286곳에서 361곳으로 약 26% 증가했다. 대부분이 자금조달에 문제를 겪거나 관계자들끼리 소송전을 벌이며 공정이 멈춘 곳들이다.
문제는 이런 현장들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여름철에 안전관리 ‘구멍’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단된 공사 현장들은 안전펜스만 겨우 설치됐을 뿐 상시 관리, 호우로 비롯된 피해 대비는 느슨한 상황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작성한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3차 정비계획’을 보면 2년 이상 공사가 중단된 장기방치 건축물 12곳 가운데 10곳은 안전조치명령 대상이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건축주가 자금난 등으로 현장을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시민 안전을 위해 지자체가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건설 경기 침체로 공사 중단 건축물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장마철에는 지자체가 중단 현황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안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구청은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만큼 앞으로도 외부 전문위원과 함께 정기 특별점검을 이어갈 계획이다. 구청 관계자는 “자금난으로 장기간 중단된 공사장이 적지 않아 관리에도 한계가 있지만 외부 전문위원과 함께 반복 점검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jookapooka@heraldcorp.com
raini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