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휴머노이드 ‘파이봇’에 조함 맡겨
병역자원 감소에 軍함정 운용유지 해법 제시
[헤럴드경제=전현건 기자] 경남 창원 해군교육사령부, 조함훈련장 함교에 선 당직사관이 “키 왼편 5도, 330도 잡아”라고 외치자 휴머노이드 로봇이 타기(선박 키 조종장치)를 잡았다.
휴머노이드 로봇 ‘파이봇(PIBOT)’은 명령을 그대로 복창한 뒤 타를 돌리고 침로가 330도로 유지되자 “330도 잡기 끝”이라고 보고했다. 항해의 상징적 장면이 인간이 아닌 로봇의 손으로 재현된 순간이다.
해군은 24일 카이스트(KAIST)와 협업해 전날 함교 타수(키잡이)를 사람이 아닌 로봇이 맡는 ‘로봇 승조원 전투실험’을 최초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전투실험은 군의 기술·체계·교리·조직 등 새로운 대안들을 공학적인 실험을 반복해 입증·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이번 실험은 첨단과학기술 기반 스마트강군 육성을 위해 해군이 추진 중인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네이비 시 고스트·Navy Sea GHOST)와 연계해 함정에서 로봇 운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네이비 시 고스트는 유인 함정과 각종 무인 시스템이 협업하는 통합 전력 구상으로, 로봇 승조원은 함정 내부에서 인력 구조를 재편하는 축으로 기능한다.
파이봇은 이날 함교 타수로 배치됐다. 지금까진 함장이거나 권한을 위임받은 당직사관이 침로·속력을 결정하고 타수와 기관전령수가 각각 타기와 기관을 조작해 함정을 운용해 왔다.
해군은 인간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조함 업무를 로봇에게 맡겨 실제 절차를 오류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핵심은 언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AI)이다. 해군과 카이스트 연구팀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파이봇이 한국어 조함 명령을 해석하고 복명복창·조작·완료 보고까지 절차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함정에서 쓰는 명령체계를 로봇에게 학습시키고 해군 표준 절차에 맞춰 응답을 정렬한 것이다.
이번 실험은 1단계로 육상 조함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진행됐다. 해군은 협수로 항해, 악기상, 야간항해 등 다양한 상황을 입력해 침로 변경·유지 능력을 시험했고 파이봇이 명령 수행에 얼마나 정확히 반응하는지 데이터로 축적했다.
전투실험은 향후 정박함정(2단계), 실제 해상 주간항해(3단계), 주·야간 장기항해(4단계)까지 확장되며 단계별로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여갈 예정이다.
기술 투자도 뒷받침되고 있다. 파이봇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미래도전 국방기술 연구개발 사업 중 하나로 방위사업청이 2022년부터 약 57억원을 출연해 카이스트 주도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단순 조종이 아닌 ‘피지컬 AI’ 기반 인간형 로봇을 전장 환경에 투입해 유·무인 복합전력의 두뇌와 손발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심현철 카이스트 교수는 “피지컬 AI 기반 인간형 로봇으로 해군 함정 조타수 업무 수행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로봇이 실제 조함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해군은 로봇이 대체 수행할 수 있는 승조원 업무 범위를 넓혀갈 방침이다.
이번 실험은 병역자원 절벽이 현실화되는 한국군에서 함정 운용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투실험을 주관한 김형준 해군 전력분석시험평가단장은 “함정 승조원 고유 업무 영역이었던 조함을 로봇이 오류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분석·평가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며 “승조원들 업무 경감, 병역자원 급감, 첨단기술 발전 등 변화하는 국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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