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이나 서울역 인근 대형마트에 가면 예전과 사뭇 달라진 외국인 관광객의 장바구니 풍경이 눈길을 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김, 라면, 고추장 등 전통적인 ‘K-푸드’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허니버터아몬드(HBAF), 비쵸비, 편의점 디저트처럼 한국인에게는 일상적인 제품들이 외국인 관광객의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흔한 간식이 외국인에게는 반드시 사야 하는 쇼핑 품목이 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제품 대부분이 전통적인 한국 음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외국인은 자연스럽게 K-푸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K-푸드의 범위가 특정 음식에서 한국인의 일상적인 소비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HBAF와 비쵸비는 한국 고유 음식은 아니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에서 경험한 일상과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이 구매하는 것은 음식 자체라기보다 한국에서 누린 생활 경험에 가깝다.
한류 콘텐츠가 K-푸드 확산의 계기를 마련했다면, 이제는 식품 자체가 독립적인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이 여행 브이로그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본 편의점 상품과 디저트를 직접 찾아 나서는 모습은 K-푸드가 ‘K-콘텐츠’의 부속 산업을 넘어 독자적인 소비재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의미가 크다. K-푸드의 개념이 전통 한식에서 한국식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될수록 기업이 공략할 수 있는 시장 역시 함께 넓어진다. 자본시장은 현재의 실적보다 앞으로 얼마나 큰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K-푸드의 진화는 단순한 식품 수출 증가를 넘어 산업의 성장 잠재력 자체를 다시 쓰고 있는 변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이제 식품기업을 단순한 제조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에는 생산 능력과 유통망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얼마나 다양한 소비 접점을 만들어내고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가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K-푸드가 하나의 음식 카테고리를 넘어 한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경험으로 자리 잡을수록 사업을 확장할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소비재 분야의 투자와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투자자들은 현재 잘 팔리는 제품보다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하나의 히트상품에 머무는 브랜드보다 스낵과 소스, 간편식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브랜드일수록 더 높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는다. 결국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현재의 제품이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열릴 시장이다.
우리는 여전히 K-푸드를 음식 산업으로 설명하지만, 소비자의 행동은 이미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K-푸드는 음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소비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이 구매하는 제품은 반드시 한국의 전통 음식일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과 디자인, 소비 방식, 생활문화를 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K-푸드가 된다.
과거 K-푸드를 둘러싼 질문이 ‘무엇을 먹는가’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경험하고 즐기는가’로 바뀌고 있다. 김치와 라면으로 시작된 K-푸드는 스낵과 디저트, 편의점 상품을 거쳐 한국인의 일상으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 세계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K-푸드는 전통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평범하게 즐기는 일상의 간식일 수도 있다. 그때 세계가 소비하는 것은 음식 한 가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한국인의 생활방식과 감성일 것이다.
이준식 삼일PwC 딜부문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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