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22일(현지시간) ‘123 협정’으로 불리는 평화적 원자력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가 평화적 원자력 협력 협정과 이에 수반되는 양자 안전보장조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번 협정이 미국 원자력 기술 수출과 공급망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높은 수준의 원자력 안전과 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정은 앞으로 미 의회의 검토를 거치게 된다.

미 정부의 공식 발표에는 구체적 언급이 없었지만 외신에 따르면 협정안에는 사우디가 자체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2년간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사우디 내 농축시설 건설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미국 기업이 시설을 건설하되 민감한 농축 기술 이전은 배제하고 미국이 보안 조치를 통해 관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상대국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기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를 원자력 협력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고, 이란 핵 문제는 여전히 중동의 최대 불안 요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원전 수출을 앞세워 전략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경제·안보적 이익을 고려해 전략적 파트너를 자국 영향권 안에서 관리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우려도 적지 않다. 우라늄 농축은 원전 연료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지만, 농축 수준을 높이면 핵무기 제조에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중용도 기술이다. 이번 협정은 타당성 검증과 미국 기업이 건설하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사우디가 자체적인 농축 역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안전조치협정(CSA)은 맺었지만, 최고 수준의 핵 사찰을 규정한 추가의정서는 채택하지 않았다. 중동의 불안정한 안보 환경 속에서 주변국들의 유사한 요구가 이어질 경우, 핵 비확산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미국과 핵추진잠수함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도 이번 협정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세계적인 원전 기술과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 핵연료 주기의 핵심 분야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른 제약을 받고 있다. 미국이 전략적 필요에 따라 원자력 협력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만큼, 한국도 핵 비확산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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