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무한상사직장인의 비애·갑의 횡포 ‘사회현실’ 음악·웃음 버무린 뮤지컬로 풀어내 2016 무한상사직장인들 의문의 죽음 ‘스릴러’로 웃음기 지우고 영화적 영상 담아내
‘위기’는 있었지만, ‘후퇴’는 없었다. 명실상부 국민예능.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에 한 살을 더했다. 더 이상의 수사도 불필요한 브랜드 가치가 생겼다.
‘무한도전’(MBC)의 전신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2005년 ’토요일‘의 한 코너로 출발했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 예능의 장을 연 새 프로그램이다. 지하철과 달리기 경주를 하고, 사람의 힘으로 자동차를 끄는 등 체력전 위주의 ‘무모한’ 도전을 했던 프로그램은 2006년 단일 프로그램으로 독립해 창의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제작진은 매주 ‘창작의 고통’을 견뎌냈다. 제작진에겐 “지난 11년이 ‘무한도전’이었다”고 한다. 출연자들에겐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어딘가 모자란 듯 했던 남자들은 11년간 성장했고, 프로그램은 이 시간동안 매주 ‘최초’와 ‘도전’의 기록들을 써내려갔다.
지난 3일엔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무한상사’가 방송됐다. 2011년 처음 선보였던 ‘무한상사’ 역시 6년의 시간동안 진화를 거듭했다. 그간 보여줬던 콩트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로 혁신을 이룬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2013 무한상사, 야유회에서 뮤지컬로 진화=‘무한상사’는 2011년 야유회에서의 콩트가 시작이었다. 이 회사는 ‘미생’ 이전 방송에 등장한 ‘유명 상사’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시대에 007 가방 하나만 들고 전 세계를 누비던 산업화의 역군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못 파는게 없다’는 ‘상사맨’. 그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와 만났다.
2011년 5월 야유회를 시작으로 2편 무한상사 오피스, 3편 무한상사 신년특집으로 이어갔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캐릭터로 움직이는 한국형 리얼리티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였던 것처럼 ‘무한상사’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콩트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무한상사 신년맞이’ 편은 젊고 유능해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이 된 유재석 부장을 중심으로 어린 상사를 모셔야 하는 박명수 차장, 만년 과장 정준하, 패션 테러리스트 정형돈 대리, 밉상동기 노홍철 하하 사원, 4년째 인턴인 길 등 일곱 명의 직장인들이 1800만 샐러리맨의 애환을 코믹하게 그렸다.
2013년 다시 돌아온 무한상사는 만년 을(乙)로 사는 직장인의 애환을 웃음과 버무리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3년 대한민국은 ‘슈퍼갑’의 전성시대였다. 불공정한 갑을관계를 향한 분노가 폭발하던 때였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800만에 달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정규직 전환’이 될 만큼 미래가 불안했으며, 부당해고의 칼바람에 현재의 자리도 ‘좌불안석’인 때였다. 모두가 을이었다. 권력을 가진 슈퍼갑들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을 끓여오라고 진상을 부린 라면 상무가 등장했고, 우유회사 영업사업은 대리점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았다.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장지갑으로 상대를 폭행한 ‘빵 회장님’도 있었다.
‘무한상사’는 적절한 시의성과 공감능력을 발휘한 스토리텔링, 음악과 웃음의 조화로 시청자를 찾았다. 뮤지컬 편을 통해 정리해고 칼바람 현실을 묵묵히 견뎌야하는 가장의 비애와 ‘갑의 횡포’를 동시에 다뤘다. 정리해고를 당한 정과장(정준하)은 연탄불 계란후라이로 홈쇼핑까지 입성했다.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전직장 ‘무한상사’의 동료들과 홈쇼핑에서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 방송에서는 홈쇼핑에 만연한 과장광고 등 불공정 거래 행태를 무한상사를 통해 풀어냈다. 거대기업의 파수꾼들은 자영업자 소시민을 무시하고 홀대했다. 동네빵집을 위협하는 ‘갑의 횡포’였다. 시청자들은 “생존에 대한 불안과 비애”(정덕현 평론가)가 녹아난 이야기에 공감했다.
▶2016 ‘무한상사’, ‘무도팬’ 김은희 작가와의 만남…장르물로 진화=기존의 ‘무한상사’가 그럼에도 예능의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2016 무한상사’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새로운 도전이라 할 만했다.
‘싸인’(SBS), ‘시그널’(tvN)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썼고, 남편인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위기의 회사원’이라는 제목이 붙어 ‘무한상사’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주요인물들을 추적해간다. 약 85분 길이로,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이 안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같은 느낌이 컬래버레이션으로의 조합이 잘 이뤄진 사례”(윤석진 충남대 교수)로 남았다.
‘장르물 대모’ 김은희 작가의 전격 지원에 그의 전작을 함께 한 ‘시그널’의 두 배우 김혜수 이제훈의 출연, 거기에 전미선 신동미 김원해 전석호 손종학 김희원에 쿠니무라 준에 이르는 배우진의 합류는 이번 ‘무한상사’가 나아갈 방향을 애초에 보여준 셈이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깨는 시도”(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로, 이들 장르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것을 ‘무한도전’ 스스로가 도전해 보여줬다는 것에 큰 의미”(정덕현 평론가)가 나온다.
‘스타 드라마작가’의 합류에도 이유는 있다. 김은희 작가는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제일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라고 말했을 만큼 ‘무도빠’를 자처했다. 제작진은 김 작가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열혈팬 인증은 이번 ‘2016 무한상사’ 편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윤석진 문화평론가(충남대 고수)는 “멤버들이 가진 기본 색채가 김은희 작가의 손을 거치며 상황에 맞는 캐릭터로 형상화돼 이를 보는 재미가 커졌다”고 말했다.
2012 무한상사 추석특집 편을 함께 했던 지드래곤은 이번에도 ‘무한상사’를 함께 하며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정극’에 도전했다. 지드래곤은 ‘무한도전’을 통해 “그동안 시나리오가 그렇게 많이 들어와도 단 한 번도 연기를 안 했는데 이번에 하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이 완전히 달라지자 배우들의 연기는 살아났다. 멤버들은 웃음기를 지우고 배우로서 작품에 몰입했다. 장항준 감독은 자칫 코믹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영화적 감각의 영상으로 담아내 쫄깃한 스릴러 한 편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은 특히 ‘무한도전’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시청자의 기대를 높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장면들이다. ‘무한상사’ 본편을 방송하기에 앞서 이들의 촬영과정이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출연자는 물론 장항준 감독 등의 수고로움이 프로그램을 통해 생생히 남았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번 무한상사는 스릴러 자체로 보면 밋밋한 스토리일 수 있지만 이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돋보였다”며 “단순한 드라마 패러디를 넘어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무한도전’의 정체성이 살아난 편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진 교수 역시 “고정관념을 깬다는 ‘무한도전’의 속성이 살아난 연장선에 있는 회차”라며 “예능이라고 코믹한 요소만 보여주고, 드라마나 영화 장르는 시도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깼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실망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좋은 퀄리티의 작품을 예능에서 했다는 점에서 박수가 나올 만 하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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