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담 개최지 항저우 공익국수집에 한국청소년 1만건 댓글 ‘선플사이트’ 전달 민간외교관 역할도…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
지난 5월쯤이었을게다.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전 건국대 교수)과 만났는데, 뭐 하시냐고 했더니 ‘선플’운동을 한단다. 선플? 그러고보니 얘기는 들어본 적 있다. 남의 심장을 후벼파고, 남의 생살이라도 뜯을 태세의 악플이 하도 넘치다보니, 각박해지고 비정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악플을 밀어내고 ‘선플(착한 댓글)’을 전파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단다. “선플을 하면, 선플이 많아지면, 착하고 조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걸 확신합니다.” 민 이사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장난기가 발동해 대뜸 물었다. 기자란 원래 사악(?)한 혀를 가졌나보다.
“혹시 정치 생각 있으세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이랬다. “정치 생각 있었으면 벌써 옛날에 했겠지요. 제가 마지막 할일을 선플달기운동에서 찾은 것 뿐입니다.”
거짓말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몇개월이 지났다. 민 이사장한테 연락이 왔다.
“중국 항저우(杭州)에 같이 가시죠. 취재하면 괜찮을 겁니다. 한국과 중국, 양 국민이 서로 우호적이고 격려하는 문화를 볼 수 있을 겁니다.”
9월 4~5일의 G20 정상회담이 열리기 바로 직전이었다. 중국 항저우에 있는 장청량 공익국수집에서 선플사이트 전달식이 있단다.
사연은 이랬다. 중국인 장청량 사장은 항저우에서 공익국수집을 운영했다. 그러면서 항저우 환경미화원들에게 공짜로 국수를 제공(하루300~500그룻), 중국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금세 중국 내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의 한 모델로 회자됐다. 이같은 감동의 스토리는 한국에게까지 밀려왔다.
한국의 선플운동본부 역시 감동했고, 올해 1월1일 ‘중국 공익국수집 응원 선플달기’ 사이트를 개설하고 선플달기 운동을 진행해왔다. 지난달 23일까지 이 사이트에는 선플이 1만450건 달렸다. 한국 청소년들이 중국 국수집의 선행을 댓글을 통해 폭발적으로 응원하고 나선 것이다.
선플운동본부는 응원선플달기 사이트도 전달할 겸, 아예 중국 항저우 공익국수집에서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그곳에 같이 가서 취재도 하고, 같이 국수 나눠주기 봉사활동을 해보자는 게 민 이사장의 말이었다.
“민간외교, 뭐 그리 거창할게 뭐 있어요. 그냥 중국 사람들과 만나 같이 좋은 일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 그게 민간외교죠.”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인해 한ㆍ중 정부 간엔 미묘한 갈등 흐름이 번지고 있지만, 민간측면에서 중국인과의 우정을 다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그것이 바로 민간외교가 아니겠느냐는 뜻으로 기자는 해석했다.
얼핏 한가지가 뇌리를 스친다. “민 이사장이 중국까지 날아가 선플운동을 전개하는 진짜 뜻은 뭘까”, “그리고 그는 어떤 연유로 선플에 중독됐을까” 등의 의문들….
▶선플은 내 삶의 후반 여정=사실 대한민국에 ‘민병철’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4050이라면 더욱 그렇다. 매일 아침, ‘굿모닝, 민병철입니다’라며 이불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던 사람, ‘민병철 생활영어’ 한번 정독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영어 열풍을 일으켰던 사람. 바로 그가 민병철이다.
‘민병철’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친숙한 것은 민병철 생활영어 책과 카세트 테이프가 영어 공부의 최고 수단이던 시절과 무관치 않다. 그땐 모두들 어려웠다. 지금이야 영어공부를 하려면 원어민 개인 교습도 있고, 온라인 강사도 있고, 사이트에 가면 얼마든지 듣기를 반복할 수 있는 ‘영어 천국’에 살고 있지만, 옛날엔 어디 그랬나. 어려운 시절, 돈없는 시절에 민병철은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MBC와 KBS에서 생활영어 방송을 하고, EBS에서 토익 프로그램을 최초로 진행한 사람, 그런 민 이사장이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당연해 보인다.
그런 민 이사장은 한때 건국대 교수로 강단에 섰지만, 어느날부터 선플운동본부 이사장에 주력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악플이 사회문제가 됐을때 ‘아, 선플운동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선플이 나의 갈 길’이구나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선플운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2007년이다. “내 영어수업을 듣던 대학생들에게 선플과제를 내준 적이 있어요. 생각보다 학생들이 과제물을 잘해왔고, 선플을 운동으로 전개하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 7년간 선플만을 위해 달려왔다. 7년전 민 이사장 제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선플운동은 지난 9년간 국내에서 7000여 학교와 단체에서 62만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9년간 전국 청소년 등이 올린 선플은 687만개를 돌파했다.
“선한 언어습관이 욕설과 말다툼을 줄이고, 학교폭력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실제 선플달기운동을 전개한 이후 학교 폭력이 50%이상 감소했다는 울산교육청의 발표에 큰 힘을 얻기도 했죠.”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 경찰청장도 쉽게 학교폭력 감소를 이끌어내지 못하는데, 선플이 지닌 엄청난 위력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영어선생님’에서 ‘국민 청소년멘토’로? 인생 영역을 넗히려는 민 이사장, 이게 그의 의중이 아닐까.
민 이사장은 서울 삼각지 근처에서 태어났다. 연희동으로 이사갔는데, 마침 교회 목사가 호주 사람이었다. 목사 자녀와 매일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었다. 그렇게 해서 영어 인생을 살게됐고, 국민 영어선생님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게 됐다.
▶항저우 공익국수집 장청량 사장과의 만남=지난달 25일 항저우 기차역 부근에 위치한 장청량 공익국수집을 찾았다. 민 이사장을 비롯한 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 관계자들과 함께였다.
‘장청량 공익국수집’은 이미 유명한 곳이 됐다. 항저우 시는 G20 정상회담 홍보 영상물을 만들었는데, 맨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장청량 공익국수집이다. 그만큼 중국 정부로서도 각국 정상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례였다는 방증이다.
지난 1995년부터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해오던 장청량 사장은 2013년 추운 겨울 이른 새벽, 찬 음식을 먹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을 보고 크게 깨달은 게 있다. “아, 저 분들을 위해 따뜻한 국수를 나눠줘야겠구나”라는.
장 사장은 다음날부터 매일 새벽에 그들에게 따뜻한 고기국수 한 그릇씩을 공짜로 제공했다. 여름에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시원한 녹두국(콩국물)을 줬다.
장 사장이 그렇다고 마냥 여유있는 사람은 아니다. 항저우 근처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 항저우로 이사왔다.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부모님은 마음이 넓었습니다. 병원 때문에 항저우에 오게된 시골 사람들은 꼭 우리 집에서 묵었어요. 한번은 10명 이상이 우리집으로 온적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인정이 많았습니다.”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남의 어려움을 모른척 할 수 없는 성격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 그 자신도 많이 배우지 못했고, 세탁소 등 생계를 위해선 온갖 일을 했지만 결국은 ‘국수와 나눔’에 그의 새 인생을 찾았다고도 했다.
이를 응원하기 위해 민 이사장과 본부 관계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수집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청소년들이 장청량 사장과 공익국수집을 응원하는 1만건이 넘는 댓글, 이 사이트를 장 사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앞선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장청량 사장과 그 나눔을 선플로 세상에 전파하려는 민 이사장의 ‘악수’는 한ㆍ중 국민의 악수였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한국 청소년들의 응원 선플 사이트를 전달받은 장청량 사장은 “우리를 응원해준 한국 네티즌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선플운동을 통해 어려울 때 힘이 되고, 좋은 일엔 함께 기뻐해주는 좋은 이웃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민 이사장은 “선플운동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제2,3의 장청량 사장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항저우에서 개최된 ‘청량공익국수집 응원사이트 전달식’은 6억명의 회원을 보유한 중국 최대의 SNS 웨이보에서 실시간으로 취재해 생중계했다. 현지에서도 그만큼 관심이 큰 행사였다.
▶선플만을 위해 살겠다=민 이사장의 꿈과 목표는 이렇듯 하나도 선플이요, 둘도 선플이다.
“선플을 하면 사람이 착해져요. 좋은 일엔 서로 격려하고, 나쁜 일엔 위로하다보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좋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하는 것, 그게 좋을 뿐입니다.”
민 이사장의 눈은 국내와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등에도 진출해 선플의 지평을 넓혀가고 싶단다.
“같이 합시다, 선플.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확 달라집니다.”
민 이사장의 권유가 싫지만은 않다.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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