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반면 유럽은 이 전쟁을 민주주의와 국제규범이라는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보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속해 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했던 미국과 유럽은 이번 회의에서 다시 우크라이나 지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익 중심 외교와 가치 중심 외교가 양립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외교도 주목할 만한 장면이었다. 국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과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대립한다. 마치 국익과 가치가 양자택일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교사의 경험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영국의 파머스턴 경은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국익뿐”이라고 말했다. 흔히 국익 외교의 상징으로 인용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19세기 영국이 유럽 세력균형 유지와 ‘영예로운 고립’이라는 외교적 전통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던 문장이기도 하다. 국익을 추구했지만, 영국다운 외교라는 가치 역시 놓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외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은 1984년 연설에서 “도덕적인 미국인들은 외교정책이 자신들이 신봉하는 가치를 반영하기 원한다. 동시에 현실적인 미국인들은 외교정책이 효과적이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조한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 역시 미국의 국익과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었다. 트럼프 시대 미국 우선주의 역시 가치의 폐기라기보다는 국익과 가치의 비중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가치와 국익은 서로를 배제하기보다 맥락에 따라 서로를 강화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 역시 단순히 국익을 훼손하는 가치 외교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원칙과 규범에 기반한 외교 행위는 도덕적 선택인 동시에 외교적 투자이기도 하다. 한국이 특정 강대국의 일방적 추종국이 아니라 스스로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국가라는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밀착하며 한미동맹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한국이 국제규범과 원칙에 따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국가라는 점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평판은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미래에 새로운 협력과 대화의 기회가 열릴 때 중요한 외교적 레버리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남북관계 관리, 한미동맹 강화,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 속 외교 공간 확보라는 복합적인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치와 국익의 이분법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 외교의 과제는 결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국익이 가치를 강화하고, 가치가 다시 국익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가치와 국익을 대립시키는 외교가 아니라 두 요소를 하나의 외교적 자산으로 축적하고 활용하는 지혜일 것이다.

김광진 한국안보전략·시스템학회장, 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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