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일주일만 미·일·중 정상과 통화
미중갈등 최대과제 ‘실용외교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에 미국·일본·중국 정상과 통화를 마쳤다. 대면 상견례에 앞서 ‘통화 외교’에 나선 셈인데,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만큼 관례적인 축하 인사를 나누는 것 이상의 내용이 오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본격적인 관세 협상 전 친밀감을 확인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는 중국보다 먼저 통화하며 한미일 협력 토대를 재차 강조했다.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단절됐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교류·협력 재개의 신호탄을 쐈다. 다만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갈등은 과제다. 대선 직후부터 미중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일본엔 ‘신뢰·우호’ 먼저…G7 주목=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관세 협의’다. 두 정상은 한미 간 관세 협의와 관련해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의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이전 정부부터 이어져 온 실무 협상에서도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독려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20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미 초청을 받고 동맹을 위한 골프 라운딩도 약속하는 등 성과를 냈다. 또한 암살위협 등 정치적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신뢰의 첫발을 뗐다.
우리나라는 통화 직후 이같은 상세한 내용을 공개했고, 미국 정부는 통화가 이뤄진 뒤 나흘 만인 10일(현지시간) 양국 통화 사실을 공식 첫 확인했다.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 질의응답에서 “이재명 대통령 리더십 하에서 우리의 동맹(한미동맹)이 계속 번창(thrive)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내주 중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면 회동 가능성이 높아진 분위기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취임 선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까지 거듭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해 왔는데,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에서 갖고 있던 가장 큰 우려가 (한국이) 중국의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 혹은 중국 쪽으로 경도된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며 “(이 대통령이) 그것을 불식하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선 ‘성숙한 한일 관계’ 등 미래지향적인 표현이 다수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 이어 두 번째 정상 간 통화로, 지난 9일 25분간 통화했다. 양 정상은 상호 존중과 신뢰, 책임 있는 자세를 바탕으로 보다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한미일 협력’ 또한 강조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중국보다 일본과 먼저 통화했다는 점에서 ‘실용 외교’ 기조가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큰 틀을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났다는 얘기다. 특히 이시바 총리의 경우 ‘친한파’로 분류돼 이 대통령과의 화학적 결합이 주목된다.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직접 한글로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우호적 행보를 보인다. 양 정상 또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남을 약속해 G7 정상회의에서 회동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李 “새로운 한중 관계 구축할 계획”=이전 정부에선 사실상 단절됐던 한중 관계의 경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시 주석과 30분 간 전화 통화하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논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초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에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방한길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중국 정상의 방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11년만이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과 통화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확인한 만큼, 긴밀히 소통하며 새로운 한중 관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또한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또 “혼돈에 빠진 지역과 국제 정세에 더욱 확실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 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미국발 관세 전쟁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 정상외교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미중 사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상숙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에 우리가 한미일 협력을 중시한다는 모습을 보이고, 중국에 대해선 특별히 ‘중국이기 때문에 통상과 관련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면 중국과도 충분히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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