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45년간 경찰 중간 간부를 배출해 온 경찰대학. 그 사이 사회적, 정치적 환경은 달라지고 수사 구조도 크게 변했다. ‘엘리트 경찰’을 상징해 온 경찰대생의 정체성은 이 사이 어떻게 달라졌나. 또 새로운 형사사법의 시대에 걸맞은 리더를 키워내고 있는지 경찰대의 존재가치를 점검한다.
‘전경(전직 경찰) 예우’ 법조시장 새 화두로
경찰대 등 경찰 출신 변호사 속속 서초동行
“검찰 전관보다 주효”, “아직은 6두품 그쳐”
인력 유출에 경찰은 골머리 “대안 마련해야”
[헤럴드경제=김아린·정주원·김도윤 기자] “경찰 언어와 수사 흐름을 가장 잘 아는 경찰대 최고 수사팀 출신 변호사.” “진짜 수사를 했던 경찰청 출신 변호사.” “경찰 수사 지휘 최전선에 있던 변호사가 곁을 지키겠습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법무법인)들이 홈페이지에 내건 홍보 문구다.
‘경찰대 출신’이 새로운 법조 마케팅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검찰이 공소청으로 재편되고 검사의 직접수사 기능이 사라지면 형사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경찰 이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파트너 변호사 전원이 경찰대 출신인 로펌까지 등장했다.
세종은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지난 2021년 경찰 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된 경찰팀을 출범했다. 김앤장은 최동해 전 경기남부경찰청장과 김귀찬 전 경찰청 차장 등을 필두로 한 경찰 대응팀을 두고 있고, 태평양·광장·율촌 등도 지방청장 급의 경찰 고위직 출신뿐 아니라 수사 실무 경력자들을 대거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경찰 초동수사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사의 첫 단추인 경찰 단계에서 전체 사건의 향방이 갈릴 수 있는 만큼 경찰 수사 문법과 내부 사정에 밝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초동에서는 ‘경찰대 ○기’가 소위 ‘먹히는 간판’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변호사시험 8회 출신 한 변호사는 “경대에 변호사라는 조합의 몸값은 엄청나다”며 “경찰이 검찰보다 훨씬 로비가 잘 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체감상 예전의 검찰 전관보다 더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시험 6회 출신 변호사는 “경찰 출신이 요즘엔 수임이 더 잘되는 것 같다”며 “경찰대는 특히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상품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경찰대 출신 변호사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경찰대 의무복무(6년)을 마치고 퇴직한 A변호사는 “경대 동문들끼리 유대감이 느슨하다고는 말 못하겠다”면서도 “다만 경찰을 상대해야 하는 변호사 일이 반드시 경찰대만 상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세간의 시각은) 과장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경찰대 20기(2000년 입학)인 B변호사는 “여전히 판검사 출신의 법조 기득권이 주요하다”면서 “경찰대 출신은 6두품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의 경찰대 출신 입학생은 2022학년도 72명에서 ▷2023학년도 87명 ▷2024학년도 92명 ▷2025학년도 91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80명 수준으로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전체 로스쿨 입학생의 3.7%를 경찰대 출신이 차지한다.
경찰관이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다면 수사 일선에서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변호사 자격을 확보한 경찰은 대개 조직 밖으로 눈을 돌린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권영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 재직자 288명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77명(26% 수준)이었다. 변호사 경력채용으로 입직한 인원이 202명(70%)으로 가장 많았고 고시 경력채용 출신은 8명(2%), 경위 공채 출신은 1명(0.3%)이었다.
한 경찰 간부는 “변호사 자격을 인사기록에 등록하는 게 의무가 아니기에 드러나지 않은 자격자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정작 법률가 역량을 조직에서 활용치 않고 경찰은 별도 경력공채로 변호사들을 뽑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함윤석 보령경찰서장(경찰대 15기)은 학술지 ‘경찰학연구’에 투고한 자신의 논문에서 경찰대 졸업생의 로스쿨 진학은 개인적 성취 욕구가 아닌 조직 내 승진 구조의 경직성, 개인적 전문성 추구 욕구, 장기적 직업 전망에 대한 고려 등이 복잡적으로 결합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형사사법체계 개편은 경찰의 이름값을 높인 배경이 됐지만, 이 요인 외에도 경찰 조직 내부의 사정이 그들을 떠나가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개별 변호사들의 인식과 별개로 최근 경찰이 다루는 굵직한 사건에서는 경찰 출신 법률 대리인이 늘 등장한다.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김병기 무소속 의원의 배우자 이모 씨와 공천헌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김경 전 서울시의원 등이 경찰 출신 변호사를 고용했다.
서울의 강남권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피의자 조사에 배석하는 변호사들 가운데 경찰대 출신이 상당수”라며 “담당 팀장, 계장과 잘 아는 사이인 경우도 더러 있어서 처신을 조심하게 된다”고 전했다.
수사권 독점한 경찰 ‘전관예우’ 문제 부상
“경찰대 지금보다 발전해야” 반대 시각도
더불어민주당에서 경찰개혁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경찰 전관예우를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 경찰개혁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김남희 의원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지금 경찰 전관이 상한가를 달리는 이유는 경찰이 수사의 최종 책임자가 돼 사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제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경찰이 견제없이 수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게 되니 수사절차에서 당사자들의 비용이 증가했다”라며 “(경찰) 전관은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 간 상호 통제를 복원해 권한 집중을 견제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 전관은 경찰대 출신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비(非)경찰대, 비변호사 경찰관도 민간 법률시장에서 역할을 맡는다. 최근엔 대형 법무법인 전문위원으로 취업한 전직 경찰간부가 경찰 인맥을 내세워 영업한 사례가 알려졌다. 총경으로 퇴직한 변모(64) 씨는 변호사가 아닌데도 단 2건의 사건을 수임해 로펌에 수임료 3억1000만원을 안겼다.
변씨는 부적절한 청탁을 한 혐의로 기소됐고 최근 울산지법은 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그는 피의자들에게 “사건 담당 책임자 수사팀장 등은 내가 데리고 있었던 직원들”, “내가 얘기하면 불구속 수사가 된다”라고 말하며 사건 의뢰를 유도했다. 또 “죽을힘을 다해서 (사건을) 빼놨다”, “어제 그 팀을 만나서 조치했다”고도 말했다.
로펌들의 경찰 전관 영입 경쟁은 2021년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당시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이 부여됐고 불송치로 사건을 일단락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경찰 공무원의 로펌 이직을 위한 심사 신청 건수는 2020년 10건에서 2021년 50건, 2022년 49건, 2023년 54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이영철 경찰청 자치경찰기획단장은 지난달 31일 국회서 열린 토론회에서 “상당수 경찰관이 개인적으로 비번과 휴가 등을 쪼개 로스쿨에 진학하거나 로스쿨에 입학하면 아예 퇴직한다”며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해 조직을 떠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로스쿨 진학을 위한 ‘연수휴직 특례’ 도입 등 법률전문가 인력을 조직에 붙잡아둘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결정을 내리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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