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내륙중심권 상생 6도시를 가다①

왕방연에 울고 ‘라디오스타’에 웃는 영월

선돌 절경도…평창은 고원 초원에서 힐링

선재길 걸어온 뒤 대관령 한우로 입도 호강

국가지질공원 영월 서강변 선돌
국가지질공원 영월 서강변 선돌

영월역은 석탄산업이 활발한 때에도 한옥이어서 이채로웠다. 당시 영월역 건너편 식당에서 다슬기탕으로 아침밥을 먹으며 단종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일까. 궁궐을 모티브로 지어진 영월역을 볼 때마다 소년왕 단종의 애처롭고 짧은 생이 생각나 마음 한켠이 쓰라리다.

올해 영월역을 다시 찾은 여행자의 마음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올해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옥 역은 그대로이고, 길 건너 다슬기탕 식당의 맛도 변함없다. 다만 식당 처마 밑에 가수 최성수·성시경, 배우 유인촌·황정민·배두나 등이 이곳을 방문했던 ‘인증샷’이 더해진 것만 달랐다.

영월 바로 위쪽에 있는 평창은 영월은 물론 충북 단양·제천, 경북 영주·봉화와 함께 ‘중부내륙중심권 행정협력회’을 꾸려 문화·관광·경제 분야에서 상생 협력을 꾀하는 곳이다.

헤럴드경제는 ‘중부내륙중심권 소도시를 가다’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창절사·라디오스타 그리고 ‘왕방연’

국가지질공원에다 박물관·미술관·역사관이 20여 개가 있는 소도시 영월은 단종에 대한 연민, 탈속 시인 김삿갓(김병연)의 낭만, 고생대 지질, MZ세대 감성의 아트센터, 서부·중앙시장 미식 체험 등을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여행자의 감성이 오르락내리락 요동친다.

이런 가운데 텅스텐·몰리브덴·마그네슘·형석·규석 등 반도체 원료 매장량이 많은 영월이 경기 남부 반도체 생산기지와 경제협력을 시작한다는 소식은 색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영월 창절사
영월 창절사

영월역에서 영월대교를 건너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세조에 의해 처형되거나 순절한 충신들의 위패가 모셔진 서원 창절사를 만난다. 늦봄 금낭화가 곱게 핀 이곳에는 박팽년·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과 김시습·남효온 등 생육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후학양성을 위한 강당과 기숙사도 있다.

창절사 경내를 거닐며 200년간 세조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바로 세워지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글귀와 그림이 많다. 이곳에서 제향과 ‘선비의 하루’를 체험할 수 있다.

라디오스타박물관에 있는 옛 가수들의 LP들
라디오스타박물관에 있는 옛 가수들의 LP들

근처의 옛 KBS 영 방송국 자리는 라디오스타박물관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배우 안성기·박중훈 주연의 영화 ‘라디오스타’의 배경이었던 이곳은 라디오 발전사 전시물, 강석·김현철·박소현 등 인기 DJ의 모습, 방송실 포토존, 옛 레코드점 모형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좀 있다면 방송 제작 체험도 할 수 있다.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책길과 라디오 모양의 카페도 있다.

청령포에 이르러 다시 가슴이 찡해진다. 단종이 갇혀있던 곳으로, 동강이 에워싸고 있어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왕방연(王邦衍)’이 단종을 이송했던 금부도사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일국의 왕이 강물에 흐르다’라는 뜻으로, 단종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천만리 머나먼 길 (중략) 울어 밤길 예놋다’ 시조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조는 단종의 사망 순간 이야기로 구전되다 후대에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정리했다. 조선 왕조가 고려 왕족이었던 왕씨에게 왕실사법무관 같은 중책을 주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청령포 옆 여행자 오락 쉼터 영월관광센터에서 다시 기분이 바뀐다. 폐광지역 통합관광을 위해 건립된 곳으로, 탄광지역 관광루트 정보도 얻고 로컬푸드, 카페, 영상, 전시를 즐기는 복합문화센터다.

영월 장릉 옆 물무리습지 전나무길
영월 장릉 옆 물무리습지 전나무길

역사·지질공원·뮤지엄…다 가진 영월

서울 쪽으로 10분가량 더 운전해 가면 단종이 묻힌 장릉이 나온다. 17세에 죽임을 당한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지만, 지역 유지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지금의 장릉인 동을지산 자락에 묻었다. 그 후 200년 만에 복권돼 왕릉처럼 꾸미긴 했지만, 홍살문-어도-정자각-능 라인이 일직선 아닌 ‘ㄱ’자의 기형적인 구조이다.

장릉 바로 옆에는 국가지질공원 물무리골 생태습지가 있다. 동을지산을 비롯해 해발 400m 안팎의 산지 일부가 샛강들에 깎이면서 퇴적물이 이동해 습지로 된 것이다. 이곳엔 멸종위기 또는 희귀종, 백부자산작약·잠자리난초·큰조롱·좀개미취·거센털지치·물쇠뜨기·진퍼리잔대·까치수염 등 식물과 삵·황조롱이·고라니·반딧불이 등이 서식한다. 인근 전나무 숲길애는 쉬어갈 수 있는 평상도 놓여있다. 영월 서쪽으로는 서울을 향해 휘돌아나가는 서강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생대 선돌 전망대가 있다. 또 MZ세대의 핫플레이스인 젊은달 와이파크 미술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의 요선암과 요선정 등도 만날 수 있다.

영월 청년들은 ▷장릉앞 능알못-와플카페-물무리습지 ▷청록다방-관풍헌-영모전-서부시장-중부내륙카페 ▷동강둔치-봉래산패러글라이딩-별마로전망대-다슬기탕거리 등 MZ세대 감성의 뉴트로드 1·2·3코스를 만들었다. 북동쪽 어라연 절경, 남동쪽 김삿갓 유적지와 주막 등 좁은 소도시에 쉴 새 없이 매력들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영월이다.

평창 삼양라운드힐
평창 삼양라운드힐

올림픽 치러낸 백두대간 평창의 탈속 여행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평가를 받는 평창은 한반도를 지탱하는 백두대간의 허리다. 대관령-선자령일대 삼양라운드힐, 하늘목장, 양떼목장 등은 평창 청정·탈속 여행의 상징이다.

이중 삼양라운드힐은 해발 850~147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동양 최대의 목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600만 평의 푸른 초원 위에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친환경 풍력발전기 아래에서 들소들이 걱정 없이 풀을 뜯는 모습은 바라만 봐도 심신이 안정된다.

삼양라운드힐의 산책길은 바람의 언덕, 숲속의 여유, 사랑의 기억, 초원의 산책, 마음의 휴식 등 5개 코스가 있다. 광장에서 정상인 동해전망대(1140m)까지의 거리는 4.5㎞로, 목장버스로 오른 다음, 양 방목지, 소 방목지, 타조 사육지, 연애소설나무 쉼터 등을 보면 된다. 문득 알프스 자락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촬영지, ‘텔레토비 동산’이 오버랩된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펼쳐지는 양몰이 공연, 송아지 우유 주기, 양, 타조 먹이 주기 체험 등도 해본다. 이곳이 국내 최고 청정 목초지인 만큼 평창한우도 최고로 친다.

우리 역사 기록이 침탈되지 않도록 깊이 숨겨둔 오대산 사고(史庫) 입구, 월정사 성보박물관 앞에는 오래 머무르며 탈속의 힐링을 맛보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 생겼다. 전문가 스님의 지도로 요가와 명상을 하며 자아 성찰을 도모하는 곳이다.

밖에는 야외에 세운 단과 성인의 말씀을 전하는 법석, 즉 야단법석(野壇法席) 같은 공간이 거대 꽃무늬 모양 화단처럼 조성돼 있다.

평창 대관령 한우
평창 대관령 한우

‘도깨비’ 촬영지인 월정사~상원사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시작해 동피골을 거쳐 상원사까지 약 10㎞ 이어진다.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다. 월정사 전나무숲을 걷을 때면 나무터널 사이로 신비의 세계를 향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곳에서 배우 공유·김고은·이동욱·유인나가 호연했던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했다. 일주문~금강교 1㎞ 구간이다.

선재길은 오대천을 몇 차례 넘나들며 이어진다. 동피골로 향하는 길은 키가 큰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숲으로 덮여있고 땅은 흙과 낙엽으로 쌓여있다. 동피골에는 오대산에 자생하는 멸종위기종과 특정식물 등 30여 종의 희귀식물을 복원하고 주변을 정원 형태로 조성한 멸종위기식물원이 있다.

동피골을 지나면 조릿대 숲길이고 이어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와 연결된다. 다시 오른쪽으로 숲길로 들어서 오대천의 좁은 상류와 동행하며 걷다 보면 상원사에 이른다. 상원사에서 다람쥐를 보면 행운이 깃든다고 하는데, 웬만한 여행자들은 다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금빛 봉황탑 아래 국보인 동종이 울리고, 여행자는 종루 앞에 앉아 선계인지, 인간계인지 구분 못 할 백두대간 심산유곡의 풍경을 멍때리며 굽어본다.

여름이 되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 봉평과 효석문화마을이 흰색 메밀꽃으로 뒤덮이며 평창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평창에는 5억년 된 백룡동굴, 5000년 안팎 생존한 발왕산 주목, 국내 최대 비엔나인형박물관, 광천선굴과 백룡동굴, 평창올림픽 스키점프대, 청옥산 육백마지기 언덕 등 자연·인문 관광지가 많다.

영월·평창=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