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美 경기침체 가능성 일제히 낮춰

전문가 “90일은 짧아…향후 협상 중요”

연준이사 “더 높은 인플레 더 느린 성장”

12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중국과의 무역 협상 후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12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중국과의 무역 협상 후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과 중국이 90일간 관세를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번 조치가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상보다 큰 폭의 관세 인하에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평가했지만, 90일 유예기간은 극도로 짧고 평균관세율이 여전히 높아 위험요소가 남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미국과 중국 간 관세 합의가 성사되자 월가는 올해 미국 경제 전망을 바꿨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경기침체 확률을 기존 45%에서 35%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올려 1.3%로 수정했다.

UBS 투자은행은 “중국 관세 인하로 올해 GDP가 약 0.4%포인트의 추가 성장을 의미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사무엘 툼스 팬시언 매크로이코노믹스 경제학자도 기존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을 약 33%에서 20%로 크게 낮췄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긍정적인 시작이라며 향후 세부협상이 중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이날 언론에 배포한 성명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날 발표한 무역 합의 내용에 대해 “예상보다 좋았다”며 “양측은 중요한 소통 채널 역할을 할 수 있는 협의 기구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제3국가들, 특히 아시아의 우리 파트너들은 이런 (미중) 긴장 완화를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미중 간 경쟁에서 받게 되는 압박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개월은 미중 간에 남아 있는 다양한 논쟁적인 무역 현안을 해결하기에는 극도로 짧은 시간이다. 현안에는 중국의 제조 역량 과잉과 중국 기업들에 주는 과도한 보조금, 중국 기업들의 환적(관세 우회) 시도가 포함된다”며 “비슷한 협상은 보통 1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고 짚었다.

로리 대니얼스 ASPI 중국분석센터 선임연구위원은 “광범위한 현안에 대한 협상이 향후 90일간 어떻게 진전될지 이야기하기에 너무 이르지만 상호 우려를 다루기 위한 절차 마련은 훌륭한 첫 단계”라며 “이는 또 세계 다른 국가들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택하라고 지목받지 않으면서도 미국과 각자의 무역 합의를 협상할 기회를 준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미중 관계의 저변에 있는 전략적 불신이 유예 기간과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느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로 미·중 관세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조업 부흥’은 무산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WSJ은 “이번 합의로 미국 경제가 다른 국가 수입품을 소비하며 더 익숙한 경로로 돌아갔다. 경기 침체 위험이 낮아졌다”면서도 “동시에 이번 합의는 미국이 제조업 강국이 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충격 요법을 사용하려던 시도를 잠시 포기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각국의 30%·10% 관세가 ‘최종 관세’가 아닌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이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미·중 무역합의에 대해 “무역정책은 진화하고 있으며 오늘 아침만 보더라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관세가 현재 발표된 수준에 가깝게 유지되더라도 상당한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쿠글러 이사는 “관세가 올해 초보다 상당히 높게 유지된다면 경제적 영향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여기에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과 더 느린 성장이 포함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경제주체들의) 선제 대응이나 심리, 기대 측면에서 이미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UBS 조사에 따르면 이번 관세 인하가 유지될 경우 대중국 실질 관세율은 약 35%로 전망됐다.

미·중 관세 외에도 주요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남아있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WSJ은 “관세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기업은 새로운 공장과 장비에 투자하거나 근로자를 추가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며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이민 단속, 정부 자금 삭감 및 해고, 학자금 부채 상환 재개 등 최근 백악관의 다른 조치로 인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