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은 인류의 삶을 이어온 가장 오래된 생명산업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도 인류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농업이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식량의 생산성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50년 만에 괄목할 만한 경제적 도약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한 녹색혁명이 있었다. 정부와 농촌진흥청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던 ‘통일벼 육성·보급’은 지난 반세기 국가연구개발 분야의 최고 성과였다.
그러나 지금 농업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범지구적 기후변화와 이상기상, 식량 수급 불균형, 인구 위기 등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농업 R&D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점점 가중되고 있는 위기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단지 다른 것을 연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서로 다른 기술이었던 아이팟·전화·인터넷을 하나로 연결한 아이폰을 만들었고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었다. 기술 간의 융합이 혁신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IT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넘쳐나는 정보와 기술을 모두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술을 많이 습득하는 것보다 이미 개발된 선진기술을 어떻게 접목하고 융합하는 것이 경쟁력이 되었다. 바야흐로 지금은 ‘지식의 시대’를 넘어 ‘연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이 직면한 국가 현안 해결과 다가올 미래 농업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농업 연구개발 혁신 방안’을 수립하였다. 혁신 방안의 핵심 가치는 바로 ‘민간과의 협업 강화’이다. 이에 대한 실행 방안이 농업에 첨단기술을 도입한 융복합 협업 대표 프로젝트 추진이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반세기 이상 체득한 경험과 누적된 농업기술에 민간이 선도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업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확립이 매우 중요하다. 농촌진흥청은 민간과의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개방형 R&D 생태계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민간 우수 기술을 도입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민관협력 전담 부서 설립과 첨단기술 협력 민관협의체 운영, 연구데이터, 정보의 민간 개방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쟁력 있는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개방형 경력경쟁 채용을 전면 실시하고 농업 분야 이외 AI, 물리, 컴퓨터, 로봇 등 타 산업 분야 전문 인재 채용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제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 고령화, 식량 위기, 탄소중립 등 전 세계가 직면한 거시적 도전에 대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리딩 국립 연구기관’으로서 바이오경제 시대에 대한민국이 농업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AI·로봇·위성 등 첨단 기술농업을 선도하고 디지털 정밀육종을 통한 종자 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마이크로바이옴, 바이오 신소재, 푸드테크 신기술을 접목한 고부가 농식품 생명소재산업을 육성하는 등 민간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여 K-농업 과학기술을 꽃피우고 글로벌 미래 농업을 선도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김병석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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