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늙고 가난한 여성의 삶
돈의동 쪽방촌 주민 나정혜(72) 씨의 삶
이혼 후 경력단절…취약한 일자리 맴돌아
유독 가난한 한국 노년, 더 궁핍한 여성들
[편집자 주] 국내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노인의 삶은 더 곤궁하다. 여성 노인들은 오랜 시간 ‘가족 돌봄’에 헌신하길 요구받았고 집 밖에서의 경력을 내려놔야 했다. 이 경력 단절은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고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했다. 나이 든 그들은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헤럴드경제는 여성 노인의 젊은 시절 헌신이, 시간이 지나 가난과 불안으로 ‘청구’되는 구조를 조명했다.
[헤럴드경제=김도윤·이영기·전새날·정주원 기자]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골목. 저녁 내 야장(야외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하면 1954년생 나정혜 씨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는 밤 11시30분께 음식점들이 영업을 마치고 내놓은 쓰레기봉투 사이에서 빈 캔과 빈 병, 돈이 될 만한 고철을 골라낸다. 손이 빨라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서다. 많을 때는 10명이 넘는 노인들이 같은 골목을 같은 목적으로 돌아 다닌다. 그렇게 새벽 1시까지 작업이 이어진다.
오전 6시. 전날 밤 주워온 폐품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고철과 빈 캔을 포대자루 2개에 나눠 담아 끌고 고물상으로 향한다. 캔 한 자루가 10㎏가량이면 1만2000원을 받는다. 많이 모은 날에는 18~20㎏을 내놓아 2만~2만5000원가량을 손에 쥐기도 한다. 소주병은 병당 100원, 맥주병은 130원에 팔 수 있다. 정혜씨가 빈 병을 모으는 것을 아는 이웃들이 문 앞에 병을 따로 내놓기도 한다.
정혜씨는 하루 두 끼 식사를 한다. 동행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포장해 와 두 번 나눠 먹는다.
일주일에 이틀은 교회를 청소하고 다달이 48만원을 받는다. 그에게 가장 안정된 수입이다. 그의 생활비는 간간이 들어오는 도배와 방 청소 일당을 모두 더해 한달 소득은 80만원을 조금 웃돈다.
지출에서 가장 큰 비용은 방세 40만원이다. 전기료 등을 합치면 매달 주거비로 약 45만원이 나간다. 매달 10만원은 주택청약저축에 넣는다. 그래도 남은 돈은 추석이나 설이면 찾아올 손녀들을 생각하며 손에 쥐여줄 용돈도 조금씩 따로 모아둔다고 했다.
19살 시작한 버스 안내원
“애를 데리고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다니던 직장도 ‘애 딸린 여자’라고 안 받아주더라고.”
나정혜 씨의 40여년 전 ‘경력 단절’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아이를 건사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닥치는대로 불안한 일자리라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쪽방촌에 살면서 폐품을 모으는 지금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돌아봐야 했다.
그의 첫 일자리는 1973년 열아홉 살 때, 버스 안내원이었다. 하루 14시간을 일하면 월급으로 1만2000원을 받았다. 당시 다른 일자리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임금이었다. 정혜 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벌었다”고 기억했다.
스물세 살 무렵부터는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혼보다는 더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통과의례처럼 직장을 떠나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 급기야 아들의 교육비로 모아가던 돈에도 손을 대려고 했다. 정혜씨는 이대로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 갈라섰다. 아들이 겨우 네댓살 됐을 무렵이었다.
이혼 후 맞닥뜨린 ‘경력단절’
요즘말로 ‘싱글맘’이 된 정혜씨. 하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버스 안내원 일을 다시 해보려 했지만 한번 일을 그만둔 뒤에는 재취업도 쉽지 않았다. 재취업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했다.
학교를 일찍 그만둔 탓에 학력도, 따로 배워둔 기술도 없었다. 아이를 장시간 데리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찾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근무시간 중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미용기술을 배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오른손 검지가 남보다 더 짧아 가위를 잡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해서다.
막막한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홀트아동복지회 앞까지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아이를 맡겨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차마 아들을 두고 돌아서지 못했다. “별생각을 다 하다가 그래도 내가 낳았으니까 고등학교까지는 길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까진 내 책임이라고.”
식당일을 하며 어렵사리 180만원의 종잣돈을 마련한 정혜씨는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 자리를 잡고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늘자 떡볶이 가게를 접고 실내포장마차를 차렸다.
40대 초반에는 주택청약저축 등을 합쳐 모은 돈이 5400만원가량 됐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장사를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마련한 돈이었다. 처음으로 자기 집을 마련하고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 볼 만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노후의 밑천은 오래가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시작한 보험설계사 일에서 손실을 본 데다 지인에게 빌려준 돈까지 돌려받지 못하면서 모아둔 5400만원을 잃었다. 여기에 5000만원이 넘는 빚까지 떠안았다.
40대에 다시 빈손이 된 정혜씨는 제주로 내려가 동생이 운영하던 가게의 주방에서 일했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았다. 이후 종로 거리에서는 돋보기 등을 팔며 행상을 했다. 빚을 모두 갚는 데 7~8년이 걸렸다. 어느덧 그는 60세를 넘긴 나이가 됐다. 이 시기에 종로구의 한 쪽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혜씨의 등에는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 식당 일을 하며 허리를 숙인 탓에 허리가 말썽이라고 했다. 지금도 통증을 줄이는 약을 먹는다.
“나는 정말 그때 애 키울 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이, 너무너무 없이 힘들었어.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은 못 살 것 같아요.”
더 가난한 고령 여성…“30년간 누적된 차별의 결과”
54년생 정혜 씨처럼 한국의 고령 여성은 ‘더’ 가난하다. 여러 통계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지난 7월 국민연금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5’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6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여성 노인이(45.0%) 남성 노인(32.6%)과 비교해 더 높았다.
헤럴드경제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분석을 통해 확인한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성별 소득 격차는 현저했다. 지난해 기준 노인일자리 참여자 3000명을 성별과 5개의 소득 구간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고령 여성의 빈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 가운데 연 평균 소득 950만원 미만인 1분위에 해당하는 여성은 23.9%, 남성 13.4%로 조사됐다. 연 평균 소득 3464만원 이상인 5분위에서는 여성 16.6%, 남성 26.7%로 집계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6월 발표한 ‘고령 여성 노후소득 현황과 취업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60~79세 고령 여성 개인소득은 남성의 40.4% 수준이다. 고령 남성 평균 개인소득은 2278만원이지만 여성의 평균 개인소득은 920만원에 그쳤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소득에서도 성별 격차가 컸다. 남성의 평균 공적연금소득은 602만원이지만 여성의 연금소득은 186만원이었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 여성의 빈곤은 30년간 누적된 차별의 결과”라며 “가정에 기여한 만큼 핵심 노동 기간에 돈을 모아놓지 못한다. 노동시장 재진입도 어렵고 그만큼 국민연금 가입 비중도 낮다”고 고령 여성이 빈곤한 이유를 설명했다.
천재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박사는“고령 여성의 빈곤이 세대를 넘어서 반복된다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비용 증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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