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제1차 전원회의 22일 개최

경기침체에 최저임금 영향력 건설·제조업 ‘대기업’도 우려

고용·복지 관련 지원금 도미노식 인상...정부 재정부담 가중도

지난해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 [연합]
지난해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조차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가진 건설·제조업의 경우 인건비 증가를 명분으로 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협력사들이 늘고 있어 경영상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시 실업급여와 출산급여 등 최저임금에 연동된 정부의 고용·복지 관련 지원금도 도미노식으로 인상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 폭이 커질 경우 정부의 재정부담 역시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2026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제1차 전원회의가 오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최임위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바 있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최저임금법에 따라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의를 마쳐야 한다. 다만 일종의 훈시규정에 불과해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이를 준수한 경우는 9번에 불과하다. 지난해 심의의 경우 5월 21일부터 7월 12일까지 진행됐다.

건설·제조업 고용감소 심화...최저임금 인상 우려

이 가운데 노동계가 제시할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 수준에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7%로 역대 두 번째로 낮았지만, 코로나19 사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내수침체에 더해 고물가 장기화, 12·3 비상계엄 사태, 트럼프 관세부과까지 겹겹이 쌓인 대내외 악재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앞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 수준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 예상보다 오래 진행된 탓에 발표 시점을 다시 내부적으로 조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단 영세 소상공인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서 ‘가장 우려하는 노동 이슈’를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 159개사 중 47.2%(75개사·복수응답)가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그 뒤를 이은 ‘중대재해에 대한 법원 판결’이 35.2%(56개사)와 격차가 크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 52.6%(40개사), 중견기업 38.9%(7개사), 대기업 43.1%(28개사)가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큰 우려 대상으로 꼽았다. 최저임금은 소상공인 경영 이슈로 인식되지만, 올해에는 대기업조차 최저임금 인상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은 시간급 1만 30원으로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8만240원, 월 환산액은 209만627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근무 기준, 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이다. [연합]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은 시간급 1만 30원으로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8만240원, 월 환산액은 209만627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근무 기준, 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이다. [연합]

실제 이들 대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최저임금이 통상임금 확대와 겹쳐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건비 비중이 큰 유통분야 대기업들은 쿠팡 등 e커머스와의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해 충격이 크다. ‘대기업’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유통업체의 경우 파견이나 계약직 등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고, 통상임금 확대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추가 인상된다면 경영상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가진 건설사들의 57.1%(8개사)는 가장 우려하는 이슈로 최저임금을 꼽았다. 제조업 기업도 49.5%(53개사)가 최저임금을 꼽았다. 이들 중엔 기본급 초봉이 최저임금 수준인 곳들이 적지 않고, 인건비 증가를 이유로 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협력사들이 늘고 있어서다. 실제 건설업과 제조업 기업들은 올해 최저임금이 1만원을 돌파하면서 고용 감소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 3월만 해도 건설, 제조업 취업자는 각각 18만5000명, 11만2000명 줄었다. 건설업은 11개월, 제조업은 9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실업·출산급여 정부 부담도 가중

최저임금 인상 폭에 따른 부담은 정부도 짊어져야 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최저임금에 연동되는 법령은 총 26개다.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 ▷지역고용촉진지원금 ▷고용촉진장려금 ▷출산전후 휴가급여 등이 연동된다. 현행 실업급여 지급액은 최저임금의 80%를 하한액으로 두고 있다. 출산 전후 휴가 때 받는 급여도 최저임금을 하한액으로 삼는다. 사업주가 받는 고용촉진장려금 등도 소속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줘야 받을 수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휴업급여, 상병보상연금, 직업훈련수당 등도 최저임금을 따라 함께 오른다. 휴업급여는 최저임금이 하한액이고, 직업훈련수당은 최저임금액에 상당한 금액을 더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소득의 범위도 최저임금에 맞춰진다. 이밖에 북한 새터민에게 주는 국내 정착지원금은 월 최저임금액의 200배를 상한으로 규정한다. 억울하게 옥살이한 경우 국가가 지급하는 형사보상금도 1일당 하루 최저임금의 최대 5배까지 지급한다.

한편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합산한 국가채무는 전년 대비 48조5000억원 증가한 1175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04조8000억원 적자로 역대 세 번째 적자 규모를 기록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결은 어렵다”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상폭이 클 경우 기업들이 받는 충격이 큰 만큼 경제성장률을 기본 기준으로 놓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일부 반영하는 방식으로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