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닷새째인 26일까지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 경북 북동부권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크게 늘고 있다. 강풍과 건조한 대기를 타고 불이 급속히 번지는 탓에 진화 작업도 애를 먹고 있다. 국립공원급의 산림 뿐 아니라 천년고찰로 잘 알려진 의성 소재 고운사 건물이 소실되고 이날 오전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10㎞ 까지 불길이 인접하는 등 중요 문화재까지 위협하고 있다. 성묘객 실화가 의성 산불의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대형 화재 대비 장비·인력의 부족, 재난 발생 후 당국의 미숙한 사후 대처 등이 피해를 더 키운 것으로 보인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산불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경북 14명 경남 2명 등 모두 18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중상 6명 경상 13명 등 19명이다. 사망자들은 주로 도로, 주택 마당 등에서 발견됐고, 당국은 이들이 급히 번지는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대피하는 과정에서 차량 사고 등으로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산림청은 전날 전국에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발령했다. 이날도 일출 시각을 기해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산불 영향 지역에 투입하고 진압작업을 재개했다.

실화와 기상 조건이 최악의 산불을 만들었지만, 당국의 미숙한 대처가 피해를 키운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성 산불의 최초 발화가 22일 있었고 강풍으로 인한 확산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위험 지역 주민들을 미리 빠르고 안전하게 대피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당국이 불길이 임박해서야 대피명령을 한꺼번에 발송하는 바람에 사상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거나 한밤중 컴컴하고 혼란스러운 탈출길에 화를 당했다. 대피장소 공지가 급하게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장비·인력도 충분하지 못했다. 이번에 동원된 진화 헬기는 대부분 담수량 1000~2700리터 규모의 중소형 기종이었다. 험한 산지를 비롯한 특수 지형 화재 진압을 위한 전문 인력도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림청에 따르면 1980년대 연평균 238건이던 산불은 2020년대 들어 580건으로 늘었고 피해 면적은 연평균 1112㏊에서 8369㏊으로 대폭 넓어졌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연중화, 대형화하고 있는데, 이에 맞는 장비와 인력·대응체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온전히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누구라도 남탓할 것 없다. 국가적 재난이 겹치고 있는 지금, 일단은 범정부적 범국민적 역량을 총동원해 불길을 잡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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