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 빵, 품질에 비해 너무 비싸요.”
한국에서 빵집에 가려면 돈을 쓸 용기가 필요하다. 손바닥 만한 빵 2~3개만 집어 들어도 1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빵 하나 고르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을만큼, 무시무시한 가격이다.
한국의 빵값은 전세계에서도 최상위다. 글로벌 생활비 데이터베이스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식빵(500g) 평균 가격은 약 4200원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비싸다. 빵값은 매년 고공행진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빵 물가 지수는 129.20으로 전년 대비 9.5% 증가했다.
그렇다고 맛과 품질도 가격에 맞는 세계적 수준일까? 과거에 비해 제빵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적 수준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극소수의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잠식한 한국의 제빵 시장에서 품질 향상을 위한 치열한 노력도, 개성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홍대 아오이토리(靑鳥)에서 만난 코바야시 스스무 제빵사는 한국의 제빵시장이 기업의 비즈니스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게 문제하고 진단했다.
“한국의 제빵시장은 비즈니스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요. 프랜차이즈 기업 이익 극대화가 목적인 시장이에요. 그렇기에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요.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시장이죠. 하지만, 소비자는 피해자일 수밖에요.”
코바야시 제빵사의 고향인 일본은 제과제빵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 수준을 자랑한다. 1000년이 넘는 일본의 화과자(和菓子) 문화와 15세기에 들어온 유럽의 제빵 기술이 합쳐져 일본만의 독특한 제과제빵이 탄생했다. 한국에도 인기가 있는 단팥빵, 앙버터, 소금빵, 소라빵, 고로케빵 등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일본에서 제빵을 시작한 코바야시 제빵사에게 한국의 시장은 다소 충격적인 곳이었다. 프랜차이즈가 장악해, 천편일륜적인 빵들. 재료의 품질 역시 그리 좋지 못했다고 한다.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재료는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프랜차이즈는 과거보다 더 공고히 시장을 장악했다. 가격은 철옹성만큼이나 높이 올라갔다.

코바야시 제빵사는 한국의 빵 시장은 기업 논리로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확히는 독과점시장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코 앞의 이익을 쫓는 시장이 아닌, 여러 가게에서 저마다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제2의 성심당·이성당이 꾸준히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빵집마다 개성있는 빵들로 경쟁해 품질을 끌어 올리고, 소비자들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빵집을 운영하는 제빵사들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빵을 만든다면, 빵 시장을 성장시키는 더 없이 좋은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 돈 역시 그 뒤에 자연스레 따라붙게 되는 영광이다. 그 사례로 소금빵을 들었다. 소금빵은 2003년 에히메현 야와타하마시에 위치한 ‘빵 메종’이란 작은 가게에서 만들어졌다. 소금빵은 한국에서 크게 히트해 지금까지도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금빵을 만든 제빵사는 원래도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셨었요. 소금빵은 그런 시도 중 하나였고요. 소금빵의 히트 이후에도 그분은 소금빵을 크게 홍보하거나 마케팅 하지 않았어요. 소금빵 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던거죠.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시죠.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빵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거 같아요. 그런 열정이 시장을 장기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 논리에 지배되지 않고,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다양한 빵을 선보일 수 있는 원동력이죠.”

코바야시 제빵사가 운영하는 아오이토리는 빵에 대한 열정,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식 빵 점문점인 이곳에서는 야키소바빵과 명란바게트, 앙버터, 소라빵 등을 맛볼 수 있다. 본토의 맛을 살리려, 단맛은 줄이고 재료의 맛은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했다. 최상의 빵을 맛보이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30분 단위로 다른 종류의 빵을 구워 낸다. 손님들에게 갓 구워낸 빵을 맛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코바야시 제빵사의 출근 시간은 새벽 4시. 빵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하고 밑반죽을 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판매하는 빵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준비 시간도 그만큼 길다. 그렇다고 해도 빵의 수를 줄일 생각은 없다. 그 빵을 찾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서울 호텔관광직업전문학교에서 특임 교수를 역임했으며, 올리브TV 올리브쇼에 1년 동안 고정 출연해 다양한 빵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한일본대사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참여해 귀빈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손님들과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가게가 됐길 바라요. 짧게 돈을 많이 버는 가게가 아니라. 지금은 약간 부족한듯 해도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는 그런 가게를 운영하는 게 목표에요. 직원들에 대한 보수가 업계 최고 수준인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