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셰프들의 미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박지영 셰프. 헤럴드DB
박지영 셰프. 헤럴드DB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음식을 온전히 즐기지 않고, 자신의 허영심만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손님을 볼 때 참담한 슬픔을 느낍니다.”

최근 셰프들을 만나다 보면 간혹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목적인 손님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모든 손님에 대한 불만은 당연히 아니다. 추억을 남기고 홍보까지 해주는데 그만큼 고마운 것이야 또 있을까.

셰프들이 지적하는 부류는 음식은 뒷전이고 오로지 사진이 목적인 이들이다. 그들은 맛을 즐기지 않는다.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요리는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단일 뿐이다. 단발성 홍보는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식문화와 요식업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며칠 전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 ‘나우 남영’을 방문해 박지영 셰프를 만났다. 그 역시 SNS가 목적인 손님들을 마주쳤을 때 들었던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이후 그의 식당도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많은 손님이 음식을 즐겼지만, 그 와중에 SNS가 목적인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음식에는 먹는 순서가 있어요. 전채요리 뒤에 파스타 등이 나오고 육류나 생선이 뒤따르는 식이죠. 가장 맛잇는 순간에 음식을 즐기기 위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SNS를 목적으로 한 손님들은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달라고 요구해요. 오랜 시간 사진을 찍고 나면 음식들은 식어버려 맛을 잃게 되죠. 그런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왜 음식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까하는 안타까움이죠. 음식이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고 SNS에 안 좋게 평가를 하신 분도 계셨어요.”

SNS 허영심을 보여주는 연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SNS 허영심을 보여주는 연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SNS이 목적인 손님이 늘수록 미식 문화는 퇴화할 수밖에 없다고 박지영 셰프는 주장한다. SNS에 올릴 사진에 어울리는, 외적으로 화려한 음식에만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맛은 뒷전이 되는 것이다.

“사진이 목적인 음식들은 화려해야 해요. 빨갛고 기름이 흘러내리는 자극적인 음식들이죠. 요식업계는 수익을 좇아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맛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요. SNS가 목적인 이들이 원하는 건 맛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SNS는 영원할 수 없어요. 결국 유행이 끝나고 나면, 그런 식당들은 사라지겠죠. 그 시간 만큼 미식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시간도 같이 사라지게 될 거에요.”

“베이스가 되는 재료 직접 만들어…정성이 들어간 요리, 오랜 시간 만들고파”

요리를 하고 있는 박지영 셰프. 헤럴드DB
요리를 하고 있는 박지영 셰프. 헤럴드DB

박지영 셰프가 그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그만큼 요리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재료를 직접 만든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닌, 셰프가 정성껏 만든 재료로 만든 음식이 진정한 미식이라고 믿는다. 그 정성만큼이나 자신의 음식을 진심으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베이스가 되는 재료들 대부분을 직접 만들고 있어요. 매일 뇨끼를 빚고, 오래 시간이 걸리는 치킨 스톡도 직접 만들고 있어요. 리코타 치즈라든지 음식에 사용되는 많은 재료들도요. 그래야 저희가 원하는 그리고 저희만의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만큼 맛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서요.”

박지영 셰프의 레몬 치즈 파스타. 헤럴드DB
박지영 셰프의 레몬 치즈 파스타. 헤럴드DB

박지영 셰프의 요리를 대하는 자세는 15년 전 뉴욕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 마레아에서 일을 하며 체득했다고 한다. 마레아에서 일을 하며 그는 자신도 꼭 이런 멋진 요리를 하는 셰프가 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셰프가 지휘하는대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꼭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았어요. 불이 타오르고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철제 주방도구가 만들어내는 소리만이 울려퍼지는 키친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셰프는 정말 멋진 직업이구나’라고 인생을 결정한 것 같아요.”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 9년 동안 여러 레스토랑을 거치고 2023년 4월 남영동에 자신의 식당 ‘나우 남영’을 오픈했다. 나우 남영은 빵과 와인과 이탈리안 스타일의 음식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부담가지 않는 가격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음식과 빵을 즐길 수 있다. 박지영 셰프는 ‘몇 번을 와도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박지영 셰프의 브레이징 문어. 헤럴드DB
박지영 셰프의 브레이징 문어. 헤럴드DB

박지영 셰프가 추천하는 요리는 ‘브레이징 문어’와 ‘레몬 치즈 파스타’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극찬한 메뉴이기도 하다. 두 메뉴 모두 상큼한 레몬으로 산미와 향을 냈다. 브레이징해 부드럽게 조리한 문어의 감칠맛과 레몬의 조화가 입맛을 돋운다. 레몬 치즈 파스타는 풍부한 치즈의 풍미에 상큼한 레몬향, 산미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박지영 셰프의 꿈은 자신의 음식을 사랑하는 손님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진정 음식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식당으로 나우 남영이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큰 꿈을 꾸지는 않아요. 그냥 ‘나우’라는 식당을 오래 운영하고 싶어요. 나우를 찾는, 우리의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나우가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