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서상범 기자]누군가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릅니다. 추억의 대상은 사람, 장소, 공간 등등 다양하죠. 그 중에서도 자동차 역시 훌륭한 추억의 매개체입니다.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장치로 말이죠.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추억 마케팅에 힘을 쏟는 것 역시, 자동차를 통한 소비자의 추억을 되살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역시 올해 초부터 ‘추억도 AS가 될까요’라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고객이 과거 소유했던 추억이 깃든 차량을 복원해 그 때의 감동을 전달하고자 한 이벤트였죠.
이벤트의 첫번째 대상은 바로 축구인 차범근 씨의 ‘G바겐 GE230’였습니다. 벤츠 코리아는 복원이 완료되기 전인 올해 초부터 “그의 30년 추억을 찾아 복원합니다”라는 홍보영상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영상에서 차범근 씨는 먼지가 가득 쌓인 G바겐을 바라보며 “차가 아니라 친구였다. 30년을 같이 늙어갔다”라는 내래이션을 통해 해당 차량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꼭 한번 같이 달려봤으면 좋겠다, 그때처럼”이라는 말이 끝나고 먼지가 쌓인 G바겐이 벤츠의 기술진에게 전달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마치 차범근 씨의 추억이 담긴 30년된 G바겐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영상이었습니다. 실제 지난 15일 벤츠 코리아는 행사를 열고 복원된 G바겐을 차범근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행사장에서 그는 말끔해진 G바겐을 옆에 두고 차량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취재진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차의 곳곳을 살피며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죠. 여기에 복원받은 차량은 좋은 곳에 썼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유튜브 캡쳐
행사가 끝나자 언론들은 “차범근의 차가 30년만에 돌아왔다”라는 제목으로 수십건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추억과 감동을 살린 성공적인 이벤트였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차범근 씨가 실제 탔던 G바겐의 소유자라는 사람이 SNS에 글을 남긴 것입니다. 그는 “차범근 씨가 타던 차를 소유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론을 통해 차범근의 G바겐이 돌아왔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G바겐은 뭐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순식간에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벤츠 코리아가 행사장에 가지고 나온 G바겐은 차범근 씨가 ‘실제 소유’했던 차량이 아닌, 단순한 ‘동일 모델’의 차량이었습니다. 차범근의 손 때가 묻은 차량이 아니란 것이죠.
이 내용을 접한 지난 23일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기업 홍보를 대행하는 업체에 문의를 했습니다.
먼저 궁금했던 부분은 차범근 씨의 소유 모델이 아닌, 동일 모델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위였습니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본 프로젝트 내 복원된 차량은 차범근 전 감독이 30년 전 타던 GE230과 동일 모델이지만 실제 운행하던 차량은 아니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차 전 감독이 타던 차량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가 없었으나 동일한 모델을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국내에서 입수할 수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즉, 차범근의 실제 소유 차량을 수소문 했지만 구하기가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동일 모델을 통해 복원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진실은 다릅니다. 우선 SNS와 자동차 업계를 종합해보면 차범근 씨의 실제 차량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카 매니아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현재 소유주를 찾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는 해명에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사진=유튜브 캡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벤츠가 복원했다는 차량이 실제 차범근 씨가 소유했던 당시의 상태가 아닌, ‘임의대로 복원했다’는 부분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GE230이라고 하나, 차범근 씨가 원래 소유했던 차는 순정 철제범퍼나 순정 와이드휀다 등이 부착된 스페셜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현재 소유주가 인수받은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벤츠 코리아의 임의대로 복원했다는 것이죠.
결국 벤츠는 차범근 씨의 당시 추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추억을 대중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물론 현행법상 철제범퍼가 불법인 상황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후사정을 알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번째 의문은 “벤츠가 실제 차범근의 소유 차량이 아닌, 복원 차량임을 왜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풀버전 영상을 통해 복원 프로젝트 공개 시, 영상 내 해당 사실을 명시하였다. 또한 보도자료 배포 후, 기사 모니터링을 통해 소유 차량으로 이해한 기자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해, 아닌 점을 명확히 밝혔다”고 답했습니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습니다. 벤츠는 수 쪽 분량의 보도자료 중 동일 모델이라는 문구를 ‘하나’ 삽입했습니다. 또 2분28초의 풀버전 홍보영상 중 1분~1분01초 부분에서 “본 차량은 차범근 씨의 89년도 차와 동일한 모델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자막을 ‘1초간’ 삽입하긴 했었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하지만 보도자료에서도, 2분이 넘는 홍보 영상에서도 주를 이루는 것은 추억에 잠긴 차범근 씨의 모습과 손 때 묻은 차량을 복원하는 벤츠의 시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마저도 1분 30초짜리 예고 영상에서는 동일 모델임을 알 수 있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또 최초 이벤트를 알리는 보도자료에는 동일 모델이라는 항목이 없었다가, 이후 자료에서 슬그머니 삽입한 것입니다.
물론 의문이 가는 내용에 대해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저를 포함한 미디어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차범근의 추억을 선물하는 듯이 어물쩡 넘겨버린 벤츠가 뒤늦게 논란이 되자 변명을 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사진=유튜브 캡쳐
무엇보다도 이번 이벤트가 불편한 이유는, 벤츠의 홍보를 위해 차범근 씨의 차량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벤츠가 대중에게 자사의 복원에 대한 활동을 어필하기 위해 현 차주를 ‘짝퉁 차범근 차량’을 소유한 것처럼 만든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 차주의 차범근 G바겐에 대한 애정은 카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며 90년식이지만 주행거리가 6만㎞를 넘기지 않을만큼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차범근의 소유차량이라는 가치를 알고 샀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이번 이벤트를 통해 짝퉁 차를 보유한 것처럼 매도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벤츠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차범근 씨에게 당시의 추억을 선물하며, 대중에게는 오래된 유산을 복원하는 기업의 모습을 홍보하려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추억을 위해, 현재 해당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또다른 이의 추억에 상처를 줬고, 홍보를 위해 대중을 기만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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