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원진아 주연 리메이크판·28일 개봉

한국 현실에 맞춘 변화…미묘한 떨림 아쉬워

28일 개봉하는 리메이크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남녀주인공 유준(도경수)과 정아(원진아) 모습 [플러스엠 제공]
28일 개봉하는 리메이크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남녀주인공 유준(도경수)과 정아(원진아) 모습 [플러스엠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요즘 시대에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순순히 한 여자를 기다린다? 좀 맞지 않죠. 그래서 유준이 정아를 의심하고, 실망하고, 배신감까지 느끼고, 이별까지 먼저 선언했다가 결국엔 사랑을 깨닫고 돌아가는 요즘 시대 연애의 흐름을 담았어요.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서유민 감독)

1999년 대만 타이베이 단수이의 한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던 원작 ‘말할 수 없는 비밀’이 2020년대 국내의 한 대학교로 옮겨오면서 시대상에 맞게 변화를 겪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리메이크작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은 서유민 감독의 말처럼 예상륜의 한국판 인물인 유준(도경수 분)은 샤오위의 한국판 정아(원진아 분)가 자꾸만 며칠씩 사라지자 ‘혹시 유부녀는 아닐까’, ‘간첩은 아닐까’ 등 불안한 마음으로 여러 가설을 세워본다. 재고 따지는 요즘 시대 20대의 연애 방식을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더 현실감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 탓일까. 몽글몽글하면서 아련함 가득한 원작의 감성이 실종된 듯 식상하다. 바닷가 앞 빈티지 무드의 샤오위네 집은 어느 시멘트 골목길의 특색없는 주택으로 바뀌었고, 오래된 피아노가 놓였던 돔 건축물은 평범한 음대 건물의 피아노실로 치환됐다. 원작에서 살림왕 남자주인공이 살던 목조주택은 모던한 스튜디오로 바뀌었고, 집안 곳곳에 먹고 난 컵라면과 맥주캔의 잔해가 놓여있어 아빠와 아들 둘만이 사는 집인 듯 너무 ‘현실감’있게 구현됐다. 보통의 한국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시감 마저 든다.

두 주인공 유준과 정아의 케미스트리는 어떤가. 두 배우 모두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자신감있게 밝혔다. 원진아는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의 샤오위는 조금 더 성숙하고 뭔가 차분한 느낌인데, 저는 체구도 작고 발랄한 원래의 성격을 살려 호기심 가득한, 천진난만한 여주인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도경수는 원작의 팬이지만 “유준 캐릭터를 잡아가는데 있어서 큰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며 “원작과 시대가 다른 만큼 다른 감성에 맞춰 열심히 표현했다”고 밝혔다.

[플러스엠 제공]
[플러스엠 제공]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 두 주인공이 느끼는 설렘이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원작을 떼어놓고 오직 이 새로운 커플에 대해서만 몰입해보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어렵다. 유준이 시종일관 이글거리는 눈으로 사랑을 담아 정아를 바라보고, 정아는 아련한 눈으로 유준을 보며 해사하게 웃음짓지만 아리송하다. 판타지 타임슬립 로맨스에 알 것 다 아는 20대 국내 대학생들의 연애를 대입하다 보니 충돌이 일어난 것일까. ‘케미’ 자체가 무형의 것인 만큼 원인을 지목하기는 힘들지만, 그 미묘한 떨림을 느끼기 힘든 게 사실이다.

서유민 감독이 강조했 듯 이 영화는 “음악영화”다. 피아노 배틀신은 백미여야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새로운 곡으로 듣는 귀는 즐거웠다. 다만 원작에선 약간 코믹하고, 오바스러운 피아노 배틀신이 리메이크에서는 정말로 ‘배틀’ 그 자체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게만 연출돼 장면 자체의 임팩트가 반감됐다.

원작을 따르거나 비튼 부분들이 그다지 만족스럽게 다가오지 않던 차, 결말만큼은 상당한 개연성을 갖춘 방식으로 변주됐다. 정아가 원작처럼 샤오위의 고질병인 ‘천식’을 앓지 않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원작에선 샤오위가 천식으로 죽는 것을 알게 된 상륜이 타임슬립을 해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샤오위의 천식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플러스엠 제공]
[플러스엠 제공]

건강한 정아는 다른 방식으로 결말을 유도한다. 좀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둘의 운명을 해피엔딩으로 이끈다.

한편 ‘말할 수 없는 비밀’에는 서브 여자 주인공이 있는데, 원작에선 ‘칭이’, 한국판으론 ‘인희’다. ‘대세 배우’ 신예은이 스크린 데뷔작으로 출연했다. 아쉬운 점은 인희의 비중이 원작과 동일하게 비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리메이크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면 인희 캐릭터에 좀 더 서사를 불어 넣었다면 어땠을까. 28일 개봉하는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80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