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 9일로 세월호 참사 24일째, 온 나라가 여전히 비탄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순간부터 구조, 그리고 대책에 이르기까지 죄다 낙제점이란 평가다. 그러기에 자탄과 분노는 더 없이 크고 그 참담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고장 난 한국號’,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이럴수록 냉철하게 남겨진 과제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개국 차원의 국가개조는 필수다. 국민적인 힘을 모아 각오를 다져야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전 국민을 위한 힐링인데 안타깝게도 마땅히 내세울만한 한국인이 없다.

때문에 한국인보다 더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사랑하는 푸른 눈의 천사, 올해로 한국 생활 38년, 그 중 34년을 경상남도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센인(나환자) 복지시설 성심원에서 환우들을 지극정성 돌봐 오고 있는 스페인 출신 유의배 신부를 찾아 ‘길’을 물었다.

유의배 신부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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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유의배 신부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유의배 신부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때가 때인지라 여기저기 그를 찾는 손길이 많아진 모양이다. 최근에 잠깐 서울에 들렀다기에 급히 연락을 취했더니 흔쾌히 만남을 허락했다. 처음 이 땅에 와 한국어를 배우던 감회가 깃든 곳, 중구 정동 성(聖)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다.

대한민국 너무 빨리빨리 외친 것이 오늘의 결과 낳아

요즘 기도가 각별하겠다고 물었다. “안타깝습니다. 하느님께서 결코 원치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지금 인간적으로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에 희생된 이들 중 대다수가 주말마다 성심원에 자원 봉사하러 오는 또래의 학생들이기에 더 가슴 아프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같은 이들이 있어서 세상 참 아름답고 살만하다고요. 그러면 와아 하고 웃으며 소리칩니다. 그런 학생들의 목소리가 자꾸 들려와요.”

국민적인 자탄과 실망이 크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답답하다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답을 낸다. “늘 기도하면서 하는 생각입니다만, 우리 대한민국 너무 빨리빨리 외치고 너무 급합니다. 수학여행을 바다로 가면 바닷길도 여행코스인데 왜 안개 짙은 밤에 무리하게 운행을 했고 또 그렇게 서둘렀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급하게 가다 결국 낭패를 당했잖아요. 천천히 자연을 배우고 느끼며 갔어야 했어요. 저는 우리 한국 사람들 너무 급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차를 몰 때 일부러 제한속도를 지킵니다. 성심원의 아이들이 보고 배우라고 그럽니다. 아이들이 빨리빨리 가자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줍니다. 이제는 제가 저도 모르게 실수로 조금 빨리 달리면 아이들이 60,70 하면서 제한속도를 외칩니다. 그땐 어이쿠 싶어요.”

그러더니 단단히 벼른 듯 갑자기 테이블 위 찻잔을 잡아 받침대에 기울게 놓는다. “같은 이치입니다. 찻잔도 빨리빨리 놓다 보니 비뚤거나 기우뚱하게 놓습니다. 어떻게 되나요. 차가 쏟아지거나 잔이 떨어지면 깨지고 맙니다.”

유의배 신부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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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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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유의배 신부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겉만 멀쩡하고 속은 텅 빈 부실 이유 제대로 깨달아야

원로 구도자의 한국적 고질병 질타는 이어진다. 갑자기 일어나 벽에 붙은 전기 콘센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경험담을 쏟아낸다. 공사를 빨리빨리 끝내려다보니 겉은 멀쩡한데 속에 구멍이 뻥 뚫리는 부실공사가 다반사더라는 것. “겉만 멀쩡한 것이 결국 큰 탈을 부릅니다. 왜 남의 나라(일본)가 15년 쓰고 버린 배를 우리가 굳이 사들여 이리저리 마구 고쳐 결국 사고를 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 아프리카인가요.”

자세히 보니 인터뷰 내내 그는 우리 학생 우리 기술 우리자식 우리나라 등등 우리라는 말을 입에 달다 시피 한다. 핏줄보다 더 찡한 무엇이 와 닿는다.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이다. “주님의 사랑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은덕으로 우리 모두 형제자매라는 마음 변치 않고 있습니다. 나에겐 머무는 곳이 내 나라입니다. 다른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유 신부 스스로 한국, 특히 경남 산청을 떠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시 정색을 하고 한국의 미래를 물어봤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룬 눈부신 발전은 기적입니다. 많은 국가나 국민들이 부러워할 정도지요. 그런데 아쉬움도 큽니다. 마치 한국, 특히 서울은 외국 같습니다. 오랜만에 와 보면 아주 낯선 도시가 돼 가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을 버린다고나 할까요. 더 이상 한국은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특히 가수나 연예인들 보면 서구문화를 너무 닮아 갑니다. 마치 미국 같아요. 물론 발전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만. 그리고 너무 서울 중심입니다. 시골이나 지방도시와 서울간의 격차가 심합니다. 서울에 오고 싶지 않습니다. 와도 얼른 내려갑니다.”

유의배 신부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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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유의배 신부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유의배 신부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4.29

어려울수록 사랑을 믿고 주고 사랑을 주고 좋은 말 나눠야

유 신부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사랑을 풍족히 느끼며 살아왔는데 이런 딱한 일이 생겨몹시 맘이 착잡하다고 한다. 요즘 들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하고 형제자매들이 눈치챌까봐 조심도 하지만 목소리가 떨려 들키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 일수록 국민 모두가 사랑을 믿고 사랑을 더 주고 좋은 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깨닫고 아는 것이 인생, 그러니까 사람다운 자세라고 말하는 유 신부, 오월 가정의 달의 의미를 일깨운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다는 사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인간으로 태어났고 성장했다는 사실을 가슴속 깊이 깨닫고 느껴야 합니다. 존재한다는 자체가 큰 축복이고 아름다운 선물이기에 누구나 내가 왜 존재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제대로 알기 바랍니다.”

서울이 너무 낯설다기에 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인간적인 면이 너무 없어지고 기계적이 돼 갑니다. 사람들은 서로 모른 체 버스나 지하철이나 터미널에서나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거의 모두 휴대폰(스마트폰)만 쳐다봅니다. 인간다움 대신 빨리빨리 뭔가 서둘러요.”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심해, 이 것 고쳐야 선진국 돼

유 신부가 바라는 바를 가장 늦게 물은 것은 큰 실수이자 결례였다. “산청에 있는 한센인 시설은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한센인들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우리 사회엔 여전히 편견이 심각합니다. 식당이나 행사장 등에서 차별을 당합니다. 그들의 자녀 역시 너무 불쌍합니다. 결혼을 해도 비밀이 있습니다. 부모가 누군지 알려지면 버림받게 되니까요. 결혼 때도 부모 장례 때도 부모를 숨깁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비로소 선진국 다운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

한센병은 전염병이긴 하지만 약으로도 금방 치유가 된다. 덥고 위생관리가 안되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에만 전염되지만 한국은 이미 그런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때문에 발병율도 전염율도 미미해 거의 안심해도 된다. 더구나 지금 한센인들은 거의 다 완쾌 된 후유장애에 지나지 않는다. 한 때 500여명이 머물렀지만 지금은 수를 셀 수 있는 이들의 평균 연령이 76세로 한센인으로선 마지막 세대나 다름없다.

유 신부는 한센병이 심각할 때도 환우들과 식사도 함께하고 힘들면 안아주고 볼에 정겹게 뽀뽀 인사도 나눴을 정도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하나 둘 병상에 누우면 밤샘 간호도 마다않고 있다.

자신들이 철저하게 버림받고 아파봤기에 남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아파하는 한센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천사들이라는 유 신부. 지금까지 150명에 이르는 남성 환우를 직접 염해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사실 하나로도 지금 우리에겐 더없는 힐링이다.

◆엄삼용 수사가 전하는 유의배 신부 스토리◆

유의배 신부는 1946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이름은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Luis Maria Uribe·68세).

한국과의 인연은 숙명적이다. 유 신부가 태어나기 9년 전인 1937년 4월, 그의 고향에는 대학살이 벌어졌다. 고향 인구 7000명 중 3000명이 나치의 포격으로 희생됐다. 도망가는 주민들을 향해 총탄 세례를 퍼부은 나치의 잔혹상을 만천하에 알린 피가소의 작품 ‘게르니카’가 바로 그 게르니카다.

전쟁의 참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어렸을 때 라디오를 자주 들었는데 동족상잔으로 나라 가 초토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저 돕고 싶은 심정에 선교사 된 뒤 한국행을 자원했다. 구도와 봉사에 매진하느라 정작 부모님의 임종은 지키지 못한 슬픔을 남몰래 가슴에 묻고 산다.

“신부님은 성심원 그 자체입니다. 늦은 밤 홀로 기도하는 모습과 한센인 어르신들과는 형제자매로 그리고 어린 장애우들과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정말 늘 감동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작은 자로서 만인의 형제로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훌륭한 선배 수도자를 모시는 저로선 큰 영광입니다.” 성심원 부원장으로 유 신부와 7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는 엄삼용(알로이시오) 수사<사진>의 말이다. 그의 심야 기도는 너무 강한 빛을 발산해 제대로 바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늘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 자기를 끊임없이 내보이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경지가 높은 구도자만이 낼 수 있는 신비의 힘이라는 게 엄 수사의 설명이다.

유 신부는 김대중 대통령 표창(1998.9), 아산사회복지상(2002.12), 이태석 봉사상(2014.1) 등 다수 포상 경력이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한 탓에 우리말이 다소 어눌해 미사강론을 힘들어하고 또 장시간 회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유 신부라지만, 인터뷰 한마디 한마디에 진정성이 샘솟고 살아 숨 쉬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한 성심원 측 양해로 인터뷰 내용을 가다듬었다) /사진=이상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