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TV 프로그램 출연자가 10여년 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 케이블 채널 올리브 ‘셰어하우스’에 출연 중인 디자이너 김재웅. 커밍아웃을 하기까지의 김재웅의 심경, 그리고 그 결과를 떠나 이날 ‘셰어하우스’는 김재웅을 본의 아닌 상황에서 커밍아웃을 하게 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케이블 채널 올리브 TV ‘셰어하우스’는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유명인 10명의 한 집 살기 프로그램으로 지난 7일 방송된 2회에서는 ‘너의 마음을 들여다 봄’이라는 제목으로 서로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느날 갑자기 ‘한 집에 살라’며 모이게 된 사람들은 서로에게 낯선 존재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선 뒷말도 많다. 이 프로그램 2회분의 제목처럼 ‘서로를 들여다보기’ 이전의 과정에선 저마다의 색안경을 끼고 한 사람을 재단한다. ‘셰어하우스’는 비교적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상당히 자연스럽고 치밀하게 낯선 사람들이 만든 호기심과 그 대상의 이미지를 들여다봤다. 그 안엔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명목으로, 조금 더 ‘친밀해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용의주도한 편집도 상당히 숨어있었다.
시작은 평온했던 어느 오후였다. 한껏 차려입은 김재웅이 ‘셰어하우스’의 멤버들 앞에 등장하자, 배우 최성준, 전직 야구여신 최희, 모델 송해나, 달샤벳 우희는 화들짝 놀란다. “그렇게 쫙 빼입고 어딜 가냐”고 묻자 김재웅은 “예쁜 여자 만나러 간다”고 자랑까지 했다.
김재웅이 자리를 떠나자 모델 송해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직업군에서는 이런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사실 난 재웅이를 봤을 때 그 쪽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제작진은 이 때 김재웅의 입주 초반 영상을 보여줬다. 여자 멤버들과의 자연스러운 스킨십, 애교있는 몸짓이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는 암시적인 영상이었다.
송해나의 발언에 한 자리에 있던 최성준은 “여자랑 데이트한다니까 그런 것 같은데”라고 말했지만, 멤버들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달샤벳 우희는 이후 송해나에게 “근데 재웅오빠 있잖아요, 만약에 그런 거면, 왜냐하면 그런 뉘앙스가 풍겨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멤버들도 그런 생각을 했잖아요”라고 말한다. 송해나도 이에 조심스럽게 맞장구치며 “그럴 수도 있지”라며 얼버무렸지만, 우희는 마지막에 “유도를 해보는건…”이라고까지 말한다.
김재웅이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자 멤버들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분위기는 자연스러웠다. 한 집에 살게 된 멤버들은 김재웅의 데이트 후기를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때 이상민은 “너의 대답이 나한텐 굉장히 중요하다. 네가 여자친구와 같이 온다면 오해가 풀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좋니 여자가 좋니”라고 물었다.
김재웅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이 상황”이라며 당혹스러워하자 이상민은 “농담이야”라며 분위기를 돌렸으나, 김재웅은 이내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여러 명이 김재웅 앞에 둘러앉아 질문공세를 퍼붓는 상황이었다.
이후 분위기를 바꾸려 멤버들은 술자리를 갖고 김재웅은 이야기를 꺼낸다. “열 명을 만나면 열 명이 다 궁금해하는 부분이다”며 “상민형과 성준형, 호영형과 똑같은 남자지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여자를 안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거면서 그는 “근데 그게 참 큰 죄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듣던 말이 ‘쟤 뭐야?’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난 항상 ‘괴물이 아니야’라고 답해야 했다”며 가슴 속 깊이 꾹꾹 눌러놓은 사연을 고백했다.
‘셰어하우스’는 이날 방송분의 말미 김재웅의 고백을 터뜨리기 위해 중반 이후 여러모로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앞서 프로그램에선 디자이너 황영롱이 홍석천의 가게에서 연정훈 등 지인들과 만나 ‘셰어하우스’에 출연하게 된 상황을 언급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홍석천은 황영롱에게 출연진이 누구냐고 묻고, 이들은 이구동성 이상민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던 중 황영롱은 “맞다, 우리 출연자 중에 재웅이라는 애가 있어”라며 김재웅의 이름을 올렸다. 홍석천은 그러자 “재웅이? 나 아는 앤데. 걔가 거기 살아?”라며 “시끄럽지 않냐”며 김재웅의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이후 제작진은 김재웅이 멤버들 앞에서 이야기 나래를 펼치는 모습을 편집해 넣었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엔 김재웅의 커밍아웃을 보여주기 위한 제작진의 복선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김재웅의 커밍아웃 이후 프로그램은 단연 화제가 됐다. 김재웅은 과거 CJ E&M 계열 디자이너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연예인들과 함께 나오는 ‘셰어하우스’의 출연이 아니었다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힐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 김재웅의 커밍아웃은 지난 2000년 당시 홍석천이 보여줬던 눈물의 기자회견, 그리고 이후 대중으로부터 받아들었던 따가운 시선과 편견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용기있는 고백이다”, “응원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김재웅 역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에 대해 불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김재웅의 커밍아웃을 다룬 방식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관찰예능 형식이라지만, 이미 제작진은 ‘김재웅의 커밍아웃’을 다루기 위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든 다. 또 멤버들이 빙 둘러앉아 김재웅에게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배려없는 행동, 심지어 송해나와 우희의 대화에서 나왔던 “유도를 해보는 건”이라는 한 마디는 김재웅이 이 프로그램에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닌 ‘아웃팅’을 당한 것으로까지 비쳐지는 대목이다.
올리브TV 관계자는 이날 방송에 대해 “녹화를 진행할 때는 제작진의 개입은 전혀 없다. 출연자들이 모이게 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이야기였다”며 "다들 긴가민가 하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나와 출연자는 물론 제작진도 놀란 부분이 있지만, 워낙에 한 가족처럼 친밀해졌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8일 헤럴드경제에 전했다.
그러면서 "녹화분에 대해서는 김재웅과의 합의를 거쳐 나가게 됐다. 김재웅은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기에 밝힐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가도 괜찮다'며 승락했다"며 "다른 출연자나 제작진은 방송 과정이나 이후의 상황이나 혹시라도 상처를 받지 않을까 우려도 컸지만, 현재는 서로 보듬고 치유해가며 잘 지내고 있다. 다른 출연자들도 내 가족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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