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음원 발표 직후 1위’란 뉴스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대한민국에서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의 ‘콜 미 메이비(Call Me Maybe)’와 마룬 파이브(Maroon 5)의 ‘온 모어 나이트(One More Night)’가 빌보드 싱글 차트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뉴스다. 뉴스마다 1위라는 곡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니 1위가 1위 같지 않은 세상이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OST는 단발성 기획이 가장 난무하는 시장이다.
참여 뮤지션들의 인지도보단 작품의 흐름과 어울리는 곡을 중요시하는 드라마 OST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가진 실력파 뮤지션들의 주된 메이저 시장 진출 창구였다. 인디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OST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음악 시장이 음원 시장으로 재편된 이후 단기간에 음원 하나로 고수익을 올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기획사는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OST의 순기능은 점차 퇴색됐다. 유명 가수의 OST 참여가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OST를 곡 단위로 쪼개 발표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실상 단순 컴필레이션 앨범과 다를 바 없게 된 OST를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발매된 한일 합작 드라마 ‘레인보우 로즈’ OST는 근래에 발표된 OST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음악적 완성도와 OST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지난 4월부터 6월 말까지 TV도쿄를 통해 일본 관동 지역에서 방송된 드라마 ‘레인보우 로즈’는 일본 유학생인 유이치(박건일 분)와 하숙집 주인의 딸이자 대학동기인 유리(강지영 분)가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그린 풋풋한 러브스토리다. 드라마만큼 풋풋한 음악으로 가득한 ‘레인보우 로즈’ OST는 완전한 형태의 앨범이 드문 현 음악 시장에서 2장의 CD라는 보기 드문 풍성한 내용물을 갖추고 있다.
첫 번째 CD는 현재 인디 씬의 가장 ‘핫(Hot)’한 뮤지션의 곡들로 성찬이다. 감성적인 일렉트로닉을 선보여 온 센티멘탈 시너리의 ‘위드 유(With)’와 ‘러브 송(Love Song)’, 제20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작곡상 출신 더 페이퍼스(The Papers)와 파니핑크의 묘이가 함께한 ‘에브리씽 래스츠 포에버(Everything Lasts Forever)’, 최근 미니앨범 ‘비터 스윗(Bitter Sweet)’을 발표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비스윗(Besweet)의 ‘달콤해(Sweet)’과 ‘캔트 스톱(Can’t Stop)’, 텐시 러브(Tensi Love)의 ‘마이 퍼펙트 블루 스카이(My Perfect Blue Sky)’ 등 OST를 위해 마련된 새로운 곡을 비롯해 루시아(Lucia) 1집 ‘자기만의 방’의 수록곡 ‘고양이 왈츠 - 어쿠스틱 버전’, 타루 2집 ‘100 퍼센트 리얼리티(100 Percent Reality)의 수록곡 ‘여기서 끝내자’ 등 기존의 인기곡까지, 첫 번째 CD에 담긴 13곡은 OST를 넘어 어지간한 실력파 뮤지션의 잘 만들어진 정규 앨범을 방불케 한다. 여기에 캐스커의 멤버 이준오와 융진, 에피톤 프로젝트까지 작사와 작곡, 코러스 등으로 참여해 무게감을 더한다. 타이틀곡 ‘레인보우 로즈(Rainbow Rose)’를 부른 드라마의 주인공인 카라의 강지영 또한 소위 ‘홍대 여신’을 연상케 하는 달달한 보컬로 귀를 잡아끈다. 두 번째 CD엔 드라마 장면들을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장르의 BGM 13곡과 더불어 미스티블루(Misty Blue)의 ‘마음을 기울이면’, 텐시러브의 ‘헤이 나우(Hey Now)’ 등 총 16곡이 수록돼 있다.
이 같이 시대를 거스르는(?) 우직한 OST의 탄생은 OST를 제작한 파스텔뮤직의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다. 모든 곡 작업 인력을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는 기존의 OST와는 달리, 파스텔뮤직은 OST 제작의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는 “파스텔뮤직엔 소속된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뮤지션들의 OST 제작 시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며 “이러한 OST는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 알리기에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과거 ‘커피프린스 1호점’ OST가 그랬듯이, ‘레인보우 로즈’의 OST가 순기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레인보우 로즈’ OST는 완성도와 관계없이 드라마가 국내에선 공중파를 타지 못한 까닭에 순기능을 펼치지 못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OST가 돼 가는 분위기다. 신해철의 솔로 앨범과 다름없는 형태로 발매된 영화 ‘정글스토리’ OST나 말만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OST였던 넥스트의 4번째 앨범 ‘라젠카 - 어 스페이스 록 오페라(Lazenca - A Space Rock Opera)’처럼 차라리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을 더욱 강조하는 콘셉트를 택했다면 지금처럼 묻히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 OST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