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박병국 기자]“꿈 많은 아이였어요.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엔지니어 꿈을 이루기 위해 외국으로 가 공부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10일 오전 9시께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스리랑카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군 대체복무를 하다 낙뢰에 맞아 숨진 김영우(22) 대원의 빈소가 마련됐다.

“용우가 코이카로 대체복무를 가게됐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6개월이나 더 오래 복무를 해야 하지만, 꿈을 위해 참는다고 했어요. ‘30개월만 고생하고 나면. 학비도 지원되니 걱정 마시라. 무사히 갔다오겠다’고 했죠. 말리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김 대원의 아버지 김강현(54) 씨의 말이다.

그렇게 자식을 이역만리 타국으로 보낸 아버지는 사흘에 한번 씩 영우 씨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 때마다 아들 영우 씨는 “걱정 마시라. 너무 편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추석 때 전화가 마지막 통화였어요.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는지 몰라요. ‘아버지 걱정마시라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그렇게 오히려 저를 위로 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난 뒤 찾아갔더니, 도로도 잘 닦이지 않은 그런 오지였어요. 낙뢰에 대한 대피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아버지 김강현 씨는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오전 10시가 돼 조문객들이 하나 둘 씩 빈소를 찾았다. 영우 씨 동생 영배(21) 씨도 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왔다. 영배 씨는 말레이시아에서 유학 중이었다. 빈소에 들어선 영배 씨는 “형 어딨어? 형 볼 수 있어”라며 울먹였다.

형과 한살 터울인 영배 씨는 사진 속의 영우 씨와 많이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영배 씨를 안으며 말 없이 마른 눈물만 쏟아냈다. 유족 대기실에 들어서자 마자 영배 씨는 어머니를 찾았다.

영배 씨는 “엄마, 걱정하지마. 내가 형 몫까지 다할게”라며 엄마의 눈물을 닦아 줬다.

영우 씨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기자가 발길을 돌렸다. 이 때 아버지 김 씨가 헤럴드경제 기자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김 씨는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영우 씨가 자동차 엔지니어로 성공하는 꿈을 꾸며 스리랑카 군 대체 복무를 시작 한지 1년째 되는 날 자기 자신에게 쓴 편지였다.

스물 두 살 젊은이의 꿈이 담긴, 희망에 찬 편지였다.

영우 씨는 편지에서 “항상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되물어 보고, 초심을 잃지 말자. 사랑한다, 세계적인 자동차계의 리더여”라고 적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