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금 부담 눈덩이 사회현안 급부상 중산층 붕괴 땐 경기침체 수렁에 금융당국 ‘신탁 후 임대’ 등 잇단 대책 은행권 장기분할 통해 상한시기 연장 전문가들 “근본 처방 아닌 미봉책”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하우스푸어(House Poor)’ 구하기에 양팔을 걷어붙였다.

원리금 상환기한 연장에서부터 신탁 후 임대, 일부 매각 후 임대 등 다양한 해법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하우스푸어’가 전체 가구의 10%에 가까운 108만가구에 이를 정도로 급증한 데다 대출금이 집값의 80%를 넘어 경매에 넘겨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만 18만5000가구로 추산되는 등 ‘집 가진 가난한 사람’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대출받아 집은 마련했지만 원리금 상환(소득의 40% 이상)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흔히 ‘하우스푸어’라 부른다. 대부분 부동산 불패신화가 정점에 달했던 2006~2007년 무렵 고액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집값이 오를 때는 적절한 타이밍에 집을 팔아 원리금을 갚고도 돈을 남길 수 있었지만, 매매시장이 얼어붙은 요즘 집을 처분하지도 못한 채 원리금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무리한 대출을 일으켰다가 부동산시장이 정체되면서 결국 그 돈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정부의 부동산대책 약발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으면서 하우스푸어의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자신을 하우스푸어라고 밝힌 직장인 김모(42) 씨는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집을 팔아서 대출금을 갚고 싶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면서 “그렇다고 갚아야 하는 원금이 있는데 집값을 터무니없이 낮춰 내놓을 수도 없지 않냐”고 하소연했다.

사태를 방치했다가는 자칫 가계부채의 뇌관이 하우스푸어에서 폭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하우스푸어의 상당수가 경제 활동의 주축을 이루는 20~40대 직장인과 자영업자”라며 “내수 경제의 중심축인 중산층이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서둘러 하우스푸어 대책들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대책은 새누리당 주도하에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 ‘일부 매각 후 임대’ 방식이다.

대출금을 갚기 힘든 하우스푸어가 주택 일부 지분을 정부에 넘겨 빚 일부를 갚은 뒤 그 집에 그대로 월세로 세들어 살면서 남은 빚을 갚아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가 4억원짜리 집 소유자가 2억원의 주택 담보 대출이 있는 경우라면 2억원에 해당하는 지분만 정부에 파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지분 2억원은 정부가 주인이므로 그에 해당하는 월세를 내야 한다. 이때 월세는 연 5% 정도로 낮게 해서 연 17% 정도인 연체 이자를 무는 것에 비해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추석 전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확정해 직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신탁 후 임대(trust and lease back)’ 방식도 유력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집주인이 소유권은 계속 유지하되 집을 관리ㆍ처분할 권한만 은행에 넘기는 방식이다. 3~5년의 신탁 기간이 끝날 때까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집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한다. 우리금융그룹은 이르면 오는 9월 말부터 이 방식을 자체 시행할 방침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하우스 푸어 입장에선 “내 집을 팔았다”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덜 수 있고,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 매입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매매 가격을 정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밖에 집값 하락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선(60%)을 넘어선 가구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장기분할을 통해 상환시기를 연장해주고 있다.

하우스푸어의 고충을 덜기 위한 이런 해법들은 그러나 모두 당장의 상환부담을 피하는 미봉책일 뿐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우스푸어가 이런 제도를 신청하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한다고 해도 수입이 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체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당장 경매로 쫓겨날 것을 3년 정도 뒤로 미룰 뿐”이라고 말했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하우스푸어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산과 부채를 줄이면서 원리금 상환을 줄이는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춘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