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나라의 앨리스(Alice au pays du sexe)
섹스를 통해 얻어진 최상의 대상이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섹스가 나쁘다고 이야기할까? 파리의 갤러리 두 곳이 어린 시절을 다룬 에로틱한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이런 모순에 관심을 가진 바 있다.
33세의 오렐리 뒤부아(Aurelie Dubois)는 자신의 데생보다 훨씬 더 정숙해 보인다. 그녀는 공책의 흰 페이지에 단정치 못한 데생들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안느+갤러리에서 열린 ‘포에버 영’이란 전시회에서 그녀는 인체 윤곽을 따라 잉크로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굵거나 가는 필적을 나타낼 때 사람들이 통상 사용하는 방법을 그녀가 구사하지만, 작품들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알파벳들이다. 선들은 얼굴, 음부, 포경수술을 한 페니스, 꿈꾸는 여성의 아래로 내려 깐 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그려내고 있다. 손가락들은 두 개의 음순 사이에서 머물러 있다.
못 말리는 순수함으로 무장한 오렐리 뒤부아는 자위행위, 오럴섹스, 그룹섹스 장면들도 그려낸다. 이들은 열정에 미친 듯이 사로잡힌 한 처녀의 세계에서 갓 튀어나온 듯이 보인다. 화가 자신과 흡사하게 생긴 여주인공들은 여러 남근들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입, 엉덩이, 손 중 어느 것을 이용해 그것을 잡을까 고민하고 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들은 모두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육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정신분석학자인 다니엘 앙드로브스키(Daniel Androvski)는 오렐리의 그림에서 섹스를 아이를 만드는 행위로 간주하는 점을 지적한다. “섹스를 통해 아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했던 아이들과 더불어 섹스가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다니엘 앙드로브스키는 오렐리 뒤부아가 자신의 성생활을 그려내는 ‘행동지침’에 대해서도 말한다. 글씨를 다시 복제할 때의 진지함을 가지고 그녀가 선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곱게 자라난 처녀가 도덕적인 모델이기를 원하는 관습을 뒤엎은 ‘이트 미, 드링크 미’란 또 다른 전시회는 순수한 어린 시절에 대한 신화를 공격한다. 바로 루이스 캐럴의 걸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서이다. 작품은 편의주의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에게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앨리스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모두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구멍(음부에 대한 은유)으로 이끄는 토끼의 매력(남근에 대한 은유)에 굴복하며, 섹스, 마약, 로큰롤 등 온갖 종류의 변태적인 행위들을 체험한다.
전시회를 마련한 파니 지니에스와 이자벨 레브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귀르 공작부인(Comtesse de Segur)이나 프란세스 베네트(Frances Bennett)가 쓴 19세기의 다른 아동문학 작품들, 다시 말해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도덕과 양속을 가르치며, 애들을 ‘어린 성인’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운 작품들과 비교해볼 때 앨리스가 겪는 모험들은 일종의 ‘거꾸로 된’ 입문소설입니다.
앨리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 교육,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한 개념으로 무장한 채 이상한 나라에 도착합니다. 캐럴이 발명해낸 세계는 무수한 육체적인 경험, 시공간적인 체험이 벌어지는 무대입니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논리와 객관성이란 개념들을 겪지요.
앨리스는 줄어들기도 하고, 비정상적으로 커지기도 하며, 지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어린아이가 돼지로 변하고, 체셔의 고양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며, 샤플리에가 차를 드는 시간에 머물러있도록 명령을 받습니다. 사회적 관습을 전복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런 풍경은 다브 그댕(Dav Guedin)의 데생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는 익살스러운 아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눈물의 늪’의 ‘화장실’ 버전을 제공합니다. 여행 중 숱한 만남을 통해 앨리스는 상상계와 부조리의 세계를 재발견합니다. 자신의 꿈과 자기만의 걱정거리를 통해 앨리스는 어린이가 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이런 동화세계 속에서 앨리스는 오직 쾌락의 논리만을 따르는 듯이 보인다. 전신거울속으로의 진정한 잠수와 다를 바 없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은 어린 시절의 어두운 부분, 그리고 그 시절의 진솔함을 다룬 멋진 전시회를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알레산드라 푸지(Alessandra Fusi)는 어린이용 동화책에서 빠져나온 듯한 파스텔 색조의 앨리스를 제작했다.
앨리스 옆에서는 물담배를 피우던 애벌레가 완전히 환각상태에 빠져있다. 그와 반대로 엑트로피옹(Ectropion)은 우리에게 ‘트래시’ 앨리스를 보여준다. 자신의 고양이 디나를 감히 발설했다는 이유로 새들에게 뜯어 먹히는 앨리스 모습이다.
또 나탈리 샤우(Nathalie Shau)는 지배적인 모습의 앨리스를 멋들어지게 재현한다. 손에는 채찍을 들고, 가슴을 내보이며, 자줏빛 입을 한 그녀는 마치 사자를 훈련시키는 사람의 태도를 하고서 디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미지는 오렐리 뒤부아의 작품(위)과 나탈리 에셔우의 작품(아래))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