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남편, 행복한 남편: ‘커컬드’에 대한 성적 환상’ (Mari trompé, mari heureux: le fantasme du "cuckold")

‘커컬드(cuckold)’는 ‘부정한 아내를 둔 행복한 남편’, 다시 말해 자기 아내가 하나 혹은 여럿의 정부(情夫) 품속에 안겨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남성을 뜻한다. 그들 대부분은 결혼한 남성들이다. 아내가 공개적으로 남편을 속이고 그로 인해 남자가 성적 흥분을 느끼는 방식이다.

‘오쟁이 진 남편’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 ‘cocu’는 ‘coucou(뻐꾸기)’에서 유래했다. 암컷 뻐꾸기는 다른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그러면 다른 새들이 암컷 뻐꾸기 대신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워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커컬드’는 다른 남자의 침대에 아내를 밀어 넣고 자기 대신 그 남자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도록 한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사실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통상적인 오쟁이 진 남편들과는 정반대로, ‘부정한 아내를 둔 행복한 남편’은 자신의 불행을 자신이 만든 장본인이다. 아내의 외도에 남편이 적극적인 역할을 행사하고 배우자로 하여금 종종 혼외정사를 갖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때때로 남편들은 아내가 타인과 나누는 정사에 참여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타인의 품속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쾌락을 맛본다. 왜 그럴까?

사디마조히즘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이유가 종종 수치심을 동반한다. ‘커컬드’는 자기 배우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으며, 자신이 무능력하고 조루증이 있으며 혹은 ‘관계를 시원찮게 치른다’고 주장한다. 그건 꼭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성적 환상의 기원에 잠재적인 동성애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여성이 마음대로 주도하는 성적 대상으로 변모되고픈 욕구도 작용했을 수 있다. 어떤 날에는 아내가 정부에게 자신을 제공하고, 또 다른 날에는 자기 남편을 대체용 섹스토이로 활용하려고 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커컬드’가 다른 남자에게 욕구의 대상이 되는 아내를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적 환상은 ‘삼각형의 욕망’에 기초해 있다. 여보, 다른 수컷들이 당신을 탐낼 때 당신 가격이 더 올라가는 것이라오.

질투에 사로잡힌 ‘커컬드’ 역시 자기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일을 한다. 아내가 떠나지 못하도록 무수한 정부와 열렬히 경쟁하는 것이다. 다소 거칠게 ‘커컬드’를 ‘이상적인 남편’으로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정부에게 맞서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는 간음한 여성을 보잘것없는 매춘부로 간주하는 도덕적 관습에 도전하는 자다.

또한 ‘커컬드’는 자기 아내가 경험하는 자로부터 쾌락을 이끌어내는 남자다. 아내가 몸을 떨고 비명을 지를 때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을 그녀와 동일시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성을 끊임없이 재정복하는 데서 유일한 기쁨을 찾으며, 자만심을 가혹하게 시험하는 남성이다.

그는 더 잘 구출해내기 위해 자신들 커플을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고, 초창기에 맛본 흥분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 든다. 그는 여러 구애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자신이 선택한 여성의 손을 잡아보기 위해서 투쟁하고, 그녀를 유혹하는 라이벌들과 경쟁을 벌인다. ‘커컬드’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사랑을 선언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지도 알지 못한 채 많은 남편은 ‘커컬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아내가 특히 아름답게 치장하도록 때때로 격려한다. 거리에서는 스무 걸음 정도 뒤처져서 걷는다. 행인들이 몸을 돌려 자기 아내에게 휘파람을 불어대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많은 여성 또한 ‘커컬드’이다. 영어로는 그들에게 ‘커키언(cuckqueans)’이란 별명을 붙인다.

에밀 카자즈의 작품 ‘카컬드’ 그녀들은 자기 남편이 다른 여성과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좋아하며, 때로는 그가 더 멀리까지 나아가도록 힘을 보탠다. 결국에는 남편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다른 곳에서’ 원하는 것을 행할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커키언’들은 자신들이 유일한 사랑으로 남는다는 것을 안다. 다른 여성이 자기에게 던지는 부러운 시선을 그녀들은 즐긴다. 요컨대 ‘커컬드’가 특권적 위치에 있지 않은지, 그들은 타인들이 단지 반나절만 즐길 수 있는 보물을 소유하고 있다. 역할의 기묘한 전도를 통해 ‘커컬드’들은 아내의 정부들이 질투심에 불타도록 만들고 있다.

나의 독자 중에 ‘오쟁이 남편 에릭’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자가 있다. “나는 아내가 정부들을 맞아들이게끔 아파트를 청소하고, 그녀와 정부들에게서 욕지거리를 들으며, 부부 침대에서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바라보고, 쫓겨난 후에는 자위행위를 하려고 통로나 부엌 쪽으로 갑니다.”

‘오쟁이 남편 에릭’이 실재 인물일까? 어쨌거나 상관없다. 그의 성적 환상은 존재한다. 희곡작품 ‘여성들의 학교’ 속에서 몰리에르는 오쟁이 진 남편을 조롱하다가 ‘커컬드’로 변하는 한 남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부정한 고백’ 속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질투를 통해 다시 사랑을 발견하는 한 커플을 그려내고 있다.

남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쓴다. “나는 미치도록 질투를 느끼고 싶어.” 그는 자기 아내, 자기 아내의 몸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불륜을 통해 새로운 관능, 대리사랑을 발견해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선을 넘었다고 내가 의심하는 정도까지 그녀는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그녀가 가능한 한 멀리 나아가기를 원한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속에서 레오폴트 폰 자허 마조흐(Leopold von sacher Masoch)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기록한다. “나는 약속에 따라 완다 데 두나예프 부인의 노예가 될 것이다. 전적으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내게 강요하는 모든 것에 저항 없이 복종해야 한다.

” 성적 환상이 온전히 완성되기 위해 소설 주인공은 완다가 불륜을 저지를 자를 찾아 애쓰지만 실패를 거두고 만다. 인터넷에서는 수백명의 남자가 이와 유사한 광고를 내고 있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내 앞의 여자를 데려가 주세요”, “나는 아내가 타인에게 속한다고 느끼기를 좋아하는 남편입니다” 등등.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