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열망을 품은 도전 (3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삼국지를 읽어보면… 천하명장 여포와 동탁 사이에 초선이란 어여쁜 여인이 끼어든다. 결론은 난장판 끝에 패가망신. 이수일과 김중배 사이에도 심순애란 어여쁜 여인이 있었다. 결론은 파투! 아무리 잘 나가던 노름판이라도 파투가 나게 마련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 대목도 마찬가지. 아무리 천하를 뒤흔들던 로마의 명장이라 해도 파투난 후에 하늘 보고 통곡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제까짓 것들이 파투 안내고 배겨?’
현성애의 속셈은 적중했다. 유호성의 질투심에 불을 댕긴 그녀는 쪼르르 밖으로 달려 나가 전진후에게 눈웃음을 살살 날리곤 했는데…
“이봐, 호성 씨! 드라이버라고 으스대는 거야? 아니면 재벌 아들네미라고 나를 얕보는 거야? 어째서 나와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타이어를 갈아 끼웠냐고?”
“뭐라고요? 타이어 선택은 전적으로 드라이버 몫이지요. 당신은 코-드라이버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되잖아요?”
“지금 비 오는 거 안 보여? 그런데 타이어를 빤질빤질한 걸로 갈아 끼운다고? 죽으려고 환장했어? 그리고… 당신? 너 지금 나보고 당신이랬니?”
여자의 힘은 비록 억세지는 못할지언정 물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어 바위를 동강내곤 한다. 현성애가 여자로서의 힘을 발휘하자 유민회장의 염원이 담긴 호크아이 팀은 낙숫물 아래에 놓인 바위처럼 맥없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제 대망의 몬테카를로 랠리를 겨우 열흘 남짓 남겨놓고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이토록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니… 소는 누가 키울까?
“그러지 말아요, 호성 씨. 잘생긴 사람이 참아야죠. 저 작자는 열등감에 빠져 있어서 그래요. 거울 볼 때마다 스스로도 짜증나는 얼굴이잖아요.”
이 대사는 분을 참지 못해 홀로 씩씩대고 있는 유호성에게 써먹는 수단이었는데, 막상 이 대사가 낭독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오빠, 왜 그래요? 오빠는 노는 물이 다르잖아요? 사내답잖아요. 그런데 쪼잔하기 짝이 없고 생긴 것도 기생오라비 같은 유호성 씨와 다퉈서야 되겠어요? 어이그… 사내답게 잘 생긴 인물이 아깝네.”
이 대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유호성의 면상을 한 방 날리려다가 가까스로 참고 돌아온 전진후에게 먹히는 수단이었다. 그러면 전진후 역시 허허! 너털웃음을 웃으며 손바닥을 툭툭 털곤 했던 것이다. 에라! 이 천하에 병신들 같으니.
“왜들 툭하면 싸우고 그래요? 서로 참으세요. 모든 거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연습이나 하자고요. 그래서 랠리가 끝나는 날, 우리 셋이 포디움에 올라있는 사진을 대한민국 온 신문에 실어보자고요.”
이것은 물론 유호성, 전진후가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 진지하게 읊어내는 대사였다. 하지만 당장엔 이 말이 현성애의 진심이었다. 아직 몬테카를로 랠리가 시작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싸움질을 하다가 대회 시작도 전에 둘이 갈라선다면? 그야말로 도루아미 타불! 매사에 타이밍이 중요했다. 아직은 둘 사이를 너무 벌려놓아서는 안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1973년에 제 1회 몬테카를로 랠리가 열린 이래 수많은 선수들이 중도 탈락했어요. 당장에 1회 대회만 해도 22대의 머신이 출발선을 넘었지만 겨우 16대 만이 결승점에 도달했단 말예요. 입상은 바라지 않더라도 무사히 결승점에 들어오려면 둘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요. 결승점에 들어오지 못한 여섯 대의 선수들은 어떻게 되었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둘의 마음가짐으로 보아서는 절대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죽어야지… 얼음판 위를 달리다가 뒤집어져서 장렬하게 죽어야지.’
현성애는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호성이 죽으면 복수는 끝나는 것일까? 전진후가 더불어 죽는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그런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어느새 겨울로 접어든 발랑스의 하늘은 우울한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