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간담이 서늘해지는 ‘오싹한 공포’가 사라졌다. 원한이 서려 구천을 떠돌고, 악귀가 돼 인간을 해하는 귀신들이 60분 드라마의 주인공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통 공포물은 사라지고, 변주된 복합장르가 각광받는다. 귀신을 향한 공포보다는 스릴러가 ‘대세’를 이루는 때다.

방송사 드라마국 PD들은 ‘전설의 고향’(KBS2)과 같은 정통 납량특집이 사라진 이유로 “시청자 성향의 변화”와 “제작비 한계” 등을 꼽는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PD는 “몇 해 전부터 납량특집 드라마의 수요가 현저하게 떨어졌다”며 “시청자들은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보다는 밝고 가벼운 장르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컴퓨터그래픽(CG)이나 특수분장 등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작업”해도 “시청률이 저조하니 제작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다.

전통적인 납량특집으로 꼽히는 ‘전설의 고향’이나 메디컬 장르를 혼합해 귀신이야기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M’(MBC), ‘RNA’(KBS2) 등의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모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시청자는 초현실적인 귀신이야기가 주는 공포에 이입하지 않는다. 허구의 장르에서도 ‘현실성’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허무맹랑한 판타지보다는 범죄 스릴러에 더 큰 공감대가 쌓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회적 범죄가 대두되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을 사람”으로 인식하는 때에, “귀신에 집중한 본격적인 공포물은 현실성이 떨어져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무섭기만 한 공포가 주를 이뤘던”(정덕현 평론가) 전통적인 납량특집의 빈 자리는 스릴러가 대체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tvN ‘시그널’을 비롯한 다양한 범죄수사물이 각광받는다. 하재근 평론가는 “최근 시청자들은 공포에 대한 욕구를 스릴러에서 찾고 있다”며 “귀신보다 범죄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진 요즘 호러는 스릴러로 장르의 변화를 맞았다”고 봤다.

본격 공포는 사라졌지만 ‘귀신’ 소재가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2013년 방송해 20%의 시청률을 넘긴 홍자매 작가의 ‘주군의 태양’(SBS)은 복합장르의 귀신 이야기로 사랑받았다. 지난해 방송한 ‘오 나의 귀신님’(tvN) 역시 빙의를 소재로 삼았다.

특히 ‘주군의 태양’은 귀신을 보는 여주인공 공효진을 중심으로 억울한 사연을 안고 이승을 떠나지 못 하는 귀신들의 한을 풀어줬다. 드라마에서 ‘귀신’은 하나의 소재로 등장했을 뿐 큰 줄기를 끌고 가는 것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였다. “귀신을 드라마 속 다양한 캐릭터의 하나로 활용”(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한 ‘변주’된 귀신 드라마다.

방영을 앞둔 ‘싸우자 귀신아’(tvN) 역시 소구력이 떨어지는 귀신을 소재로 다루며 장르의 변화를 꾀했다. 공포 장르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우려는 ”코믹과 멜로를 가미한 형태”(박준화 CJ E&M PD)로 상쇄시켰고, 특수분장으로 태어난 귀신 이야기에는 공감 요소를 넣었다.

연출을 맡은 박준화 PD는 “드라마에 나오는 귀신들의 스토리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의 포인트가 담겼다”며 “성희롱 가해자였던 사람이 귀신이 됐다는 설정 등 현실의 부조리를 극 안에서 퇴마의 형태로 풀어 통쾌함을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장르의 혼합과 현실성 있는 스토리의 부여가 달라진 ‘귀신 드라마’의 성공법칙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귀신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무섭기만 한 공포장르의 힘은 약하지만 귀신을 등장시켜 다른 맥락으로 치환했을 때 힘을 발휘한다”라며 “특히 귀신의 스토리가 사회적 공포와 맞닿아있어야 한다. 살인사건, 현실적인 불안, 사람 사이의 관계 등에서 오는 문제들이 스토리로 녹아났을 때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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