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유로화 탈퇴 시사’ 왜?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가 공개적으로 유로화 탈퇴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여당 중진이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의 그리스 대표인 마리아 다마나키 의원이 25일 성명서를 내고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가 이미 논의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아니지만 그리스 정부를 대표할 만한 인사가 유로화 탈퇴 카드를 꺼내든 것은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지원이 늦어지면서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 정부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스는 IMF와 EU가 지난해 합의한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지원금 중 5차분 120억유로를 다음달에 지급하지 않으면 143억유로가량의 국채 만기물량을 막지 못한다.
지난 6일 긴급 소집된 유로존 주요국가 재무장관회의에서 그리스 정부가 유로화 탈퇴라는 최후의 카드를 무기로 추가 지원을 촉구했지만, 결국 추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가부도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기존에 지원받기로 한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이 다 집행되더라도 내년에는 만기 국채물량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EU와 IMF에 추가로 600억유로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와 함께 채무 축소조정을 통해 국채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리금을 줄여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 6일 열린 유로존 주요국 회의나 17일 열린 전체 17개국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추가 지원이나 채무축소 조정방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그리스 부도의 전염 우려에 분노하며, 그리스가 국유자산을 매각해 자구노력을 보이고 추가 긴축안을 내놓는 등 구제금융을 되갚을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23일 부랴부랴 국영 통신사, 수도회사, 공항 등 국유자산 70억유로어치, 그리고 향후 2015년까지 추가 매각 방침을 밝혔지만 다음날 야당이 반대하면서 이마저도 무산될 처지다.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지금 파국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추가 지원과 채무 축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채무 축소조정에는 채권자인 국제 투자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국제 투기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무디스, 피치 등 월가의 신평사들은 그리스가 채무 축소조정을 시도하면 국가 부도로 처리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유로존 금융기관 수장들도 엇갈린 입장이다.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의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그리스 채무를 소프트 리스트럭처링 방식으로 줄여줘야 국가 부도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며, 독일 프랑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ECB가 그동안 450억유로의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 채권을 사들였는데 채무조정은 있을 수 없다며 지난 4일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25일 크리스티앙 노이어 프랑스은행 총재도 그리스 채무를 조정해주면 바로 국가 부도가 발생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반면 이날 독일 분데스방크의 겐스 바이드만 신임 총재는 그리스 채권 연장이나 채무 축소조정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만약 유로존이 지원해주지 못하면 그리스 정부는 결국 유로화를 탈퇴하고 모라토리엄(채무유예)을 선언해 채권자들과 강제적으로 빚잔치를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주요 경제학자들도 그리스가 자국 통화를 부활시켜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고 혹독한 경제체질 개선 과정을 거치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고 지적한다.
고지희 기자/jgo@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