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회> 적과의 동침 32
무릇 남녀 간의 상열지사에도 법도가 있어야 한다. 남자는 와일드하면서도 근엄한 포스로, 여자는 새침하면서도 오묘한 포스로 거사를 감행해야 일품이라는 말인데… 유리는 비교적 샤론 스톤의 포스가 살아나고 있었지만 유호성이야말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채신머리 없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열기를 식히느라 부산했다. 그 와중에도 유리는,
“김지선, 그 여자는 가슴이….”
가슴이 어떻게 생겼냐고, 자기보다 훨씬 예쁘냐고 되물어보는 중이었고,
“계란 프라이….”
계란 프라이도 이 정도 뜨거운 보닛 위에서라면 즉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호성이 대답하는 중이었다. 동상이몽, 다만 묻고 대답하는 시간이 동일했을 뿐이다. 그 대답을 들은 유리는 자신감에 넘쳐 아예 C컵 젖가슴으로 호성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호성의 엉덩이에 생겨난 화상물집은 점점 커져만 갔다.
위에서 C컵 젖가슴으로 묵직하게 짓누르는 압박, 밑에서는 채신머리 없이 들썩이는 유호성의 엉덩이…. 공교롭게도 이 현상은 거성자동차와 유민 그룹이 먹어치우려 하고 있는 블루아우토의 주식가격 변동 즉, 주가차트를 들여다보는 것과도 흡사했다.
거성자동차가 블루아우토의 백기사 노릇을 충실히 감행하는 것 같으면 블루아우토의 주가가 뛰고, 조금이라도 회의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현상. 이것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채신머리 없이 들썩이는 유호성의 엉덩이짓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거성의 압박이 심해지면 그래프가 들쭉, 압박이 약해지면 그래프도 역시 날쭉, 유호성이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주가차트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은 거성자동차 전략담당 상무 도종호와 로비스트 송달민, 그리고 ‘메 트러스트’ 대표이사 제임스 박이었다.
“권도일 전무님. 약속대로 주식을 매입하셨습니까?”
주가차트를 면밀히 검토하던 도종호 상무는 이미 같은 배를 타기로 약속한 블루아우토 권도일 전무에게 은밀히 전화를 걸었다.
“네, 그동안 거의 7%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주가가 9일째 하락 중이라 매입에 별반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 거성에서 앞으로 닷새 동안 총 공세를 펴도록 하겠습니다. 주가가 다시 폭발적으로 오르겠지요. 정확히 닷새 뒤, 폐장시간에 맞춰서 전무님 소유의 모든 주식을 팔아치우세요. 그날 저녁에 우리 거성에서는 블루아우토의 백기사 노릇을 포기하겠다는 정보를 언론에 흘리겠습니다. 닷새 동안 전무님께서 챙기게 될 주식차액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 돈은 약속대로 우리 거성에서 권도일 전무님께 드리는 보너스입니다.”
“그 이후의 주식가격 하락을 어느 정도 예상하십니까?”
“오늘 기준으로 30% 하락을 기대합니다.”
“유민 회장이 폭락한 주식을 모두 거둬들이려 하지 않을까요?”
“그 닷새 동안 유민 제련그룹에서는 레이싱 사업 착수금 500억원을 현금으로 납입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주식매집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 이후에도 1년 안에 2500억원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지요. 정치판에 계시는 높은 분과 연계해서 벌이는 작전이니 전무님은 맘 푹 놓으시고 행동에 돌입해 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 부탁인데요…. 블루아우토는 우리 부친께서 청춘을 바쳐 일구어 낸 회사입니다. 그러니 향후에 거성에서 경영하시게 되더라도 블루아우토가 지켜왔던 아이덴티티를 짓밟지는 말아주십시오.”
“물론이지요. 전무님도 이제 우리와 같은 배를 탄 동지 아니겠습니까? 전무님의 의지도 충분히 반영될 것입니다.”
거성의 수하들은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데, 유민 그룹의 황태자는 뜨거운 보닛 위에서 상열지사에 여념이 없었으니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