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회> 파멸의 시작 41

“유리야, 이 애비 실력이 어떠냐?”

날씨가 영하권을 맴도는 탓에 필드에는 나가지 못하고 실내 스크린골프장을 찾은 강준호의 입은 함박처럼 벌어져 있었다.

“겨우 210미터 나갔네요. 그 정도로 무슨 실력을 뽐내세요?”

그의 딸 유리는 타석에 올라 드라이버를 비껴 잡으며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요즘엔 LPGA의 웬만한 여자 선수들도 230미터에서 심지어 250미터까지 날리곤 했으니 210미터 비거리로는 돼지 앞에서 코 까는 격에 불과하다는 투였다.

“그게 아니라 유민, 그 녀석의 회사를 점령하는 실력이 어떠냔 말이다.”

“아! 그 실력?”

하지만 유리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문득 강준호 몰래 유민 회장과 다녀온 몽골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래선 안 되는데… 유리는 고개를 좌우로 힘껏 저으며 에이밍을 시작했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상념이 들어차 있으니 공이 맞을 리 있을까.

“유리야, 아무리 허접한 스크린골프장이지만 집중을 해야지. 일단 골프채를 잡으면 삼매경에 빠져들라고 했잖니?”

강준호는 언제나 그랬듯이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작은 수첩을 꺼내어 유리의 눈앞에 펼쳐들었다. 그 수첩에는 골프 경기에 임하기 전,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집중 속에 잠겨 있는 맑은 의식, 아무런 바람이나 욕망도 없이 신성한 빛으로만 가득 찬 마음상태를 유지하란 말이야. 골프 경기란 결코 이기려고 해선 안 돼. 상대가 210미터를 날리든 250미터를 날리든 상관없다. 너는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아무런 바람도, 욕망도 지녀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그는 유리를 타석에서 끌어내렸다. 마음을 집중하지 못한 상태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은 오로지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차라리 커피나 마시면서 사업이나 논하자는 생각이었다.

“유리야, 이제부터 우리가 세웠던 계획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어. 하지만 막연하기도 하구나. 당장 유민제련그룹에 출근하게 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아. 평생 운동선수로만 살아오다가 회전의자에 앉아 근무하려니 벌써부터 두드러기가 생기려고 한단 말이다. 이걸 어쩌면 좋으냐?”

진심이었다. 한때는 세상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풍운아였고, 한동안은 사업을 망해먹은 비운의 사업가였지만 유리 앞에서만큼은 누구와도 다름없는 다정하고도 소탈한 아버지였다. 따라서 강준호가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의 딸 강유리 앞에서일 뿐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 양복부터 멋진 것으로 한 벌 사러 가요. 명색이 스포츠마케팅 팀장인데 외모도 산뜻해야 하잖아요?”

“좋지. 한 벌 뽑아 입어야겠다. 그런데 외모도 중요하지만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포스가 생겨나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 같다. 첫 출근하면 졸개들이 딸려 있을 것 아니냐? 그놈들에게 뭔가 본때를 보여야 하는 거 아닐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아빠. 출근하면 집무실 벽에 온갖 장식들이 치장되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모두 떼어버리세요. 그리고 휑하니 드러난 벽에 이 드라이버 하나만 걸어놓는 거예요. 마치 무사들이 벽에 칼을 걸어놓듯이 말이지요.”

“그래? 그거 참 멋진 생각이다. 폼부터 재잔 말이지?”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써놓는 거예요. ‘My Way’ 이렇게 한 줄! 어때요? 그럴싸하지요?”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에게 바라는 유리의 진심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아빠는 골프에 전념하세요. 유민제련그룹은 내가 접수할게요.’ 하는 속삭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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