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이 몰고 온 한국경제의 불안정성은 나라밖에서도 우려할 정도다.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사인 대만의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9일 자서전 출간 기념식에서 “삼성은 전략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최근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회사 경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나 파운드리 2나노 공정의 수율 문제 등 기술적 과제 외에도 한국의 정치 불안이 계속되면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모리스 창의 불길한 전망이 현실화할까 걱정되는 상황이 10일 벌어졌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 주도의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정부 원안대비 4조1000억원이 삭감된 가운데 반도체특별법, AI기본법 등 한국경제의 주력 및 미래 성장동력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 상정도 불발됐다. 반도체특별법에는 반도체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해외 경쟁 기업들이 새벽까지 불을 밝히며 연구에 몰두하는데 우리는 경직적인 주 52시간제 때문에 아이디어가 떠오를 만하면 흩어져야 한다. 출발선부터 불리하다. 이런 시간이 축적되면 TSMC와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의 전력 공급을 책임질 전력망 특별법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산업은 ‘전기먹는 하마’라는데 입법이 늦어지면 경쟁력이 뒤처질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7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에서 한국이 상위 5개국에 들지 못하고 2군으로 분류된 마당이라 우려를 더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소한 경제만큼은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자”며 여야정비상경제회의를 제안한 점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화답했다. 지금은 가장 일상적인 정책들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경제의 회복력을 대외에 과시하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