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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100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직도 딸이 그렇게 세상을 떴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애들 학교 보내고 애 아빠랑 단 둘이 있을 때면, 누가 놀래킨 것도 아닌데 혼자 깜짝 놀라곤 해요. 딸이 떠난 후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한정숙(가명ㆍ여) 씨의 시간은 지난 4월 16일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세월호 희생자인 한 씨의 딸 고(故) 김지수(가명ㆍ17) 양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새 100일 다가온다.

어느 정도 슬픔을 이겨낸 것 같다가도 딸의 사진이나 세월호 뉴스를 접할 때면 눈물이 북받쳐 오른다. 때론 무력감이 몰려와 하루 종일 누워만 지내기도 했다. 한 씨의 남편 역시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가 이달에야 복귀했다. 부부는 아직도 단 둘이 있을 때면 딸 생각에 약속한 듯 말문을 닫는다.

김 양이 가족 품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4월 23일. 여태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오랜 기다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씨는 딸이 바다 속에 있던 여드레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TV에서 대형사고 뉴스를 볼 때면 ‘저 사람들 어떡해, 어떻게 자식을 잊고 살아’ 했는데 막상 내게 닥치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장례를 치르던 날까지 딸의 통화 연결음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딸이 휴대전화를 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물에 젖어 고장난 휴대전화는 미동도 않는데 통화 연결음은 울리니까 더 믿기지 않더라구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고 무서워요.”

충격에 망연자실한 나머지 장례를 치르는 3일간 통곡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바다에 있던 딸을 뜨거운 불 속으로 보내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울음이 터져나왔다.

하루에 몇 번이고 감정이 널을 뛰었다. 언제까지고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특히 몸이 불편한 막내를 주 2회 재활훈련센터에 데려다 줘야 했다. 또 사춘기인 둘째 딸을 위해 슬픔과 울분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속 깊은 둘째도 한 씨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언니의 빈자리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둘째가 “이젠 내가 언니 대신 막내 책임져야 하는 거지?”라며 전보다 각별히 동생을 챙긴다”고 한 씨는 말했다. 또 “큰 애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 마음 아프지만 남은 아이들이 없었다면 더 무너졌을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선 애들에게 고맙다”며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쩐지 죽은 큰 딸에게 소홀해지는 것 같아,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또 단식까지 하며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 힘쓰고 있는 다른 유가족들에겐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숨진 김 양의 꿈은 특수교사였다고 한 씨는 전했다. 김 양은 몸이 불편한 막내 동생의 재활치료 과정을 보며 특수교육과 진학을 꿈꾸었다.

“다른 유가족한테도 미안하고, 또 누구보다도 죽은 딸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큰 애가 배려심이 깊었던 애라 동생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해해줄 거라 믿어요.”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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